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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진 모정으로 자녀 공범으로 전락"…법원, 최순실·정유라 '공범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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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잘되길 기원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줬고, 급기야 삐뚤어진 모정은 결국 그렇게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법원이 딸 정유라씨(21)의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최순실씨(61)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국정 농단 수사에 착수한 뒤 8개월 만에 최씨에게 내려진 첫 선고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과 삼성 뇌물 사건 등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는 최씨가 청담고·이화여대에 영향력을 행사해 학적관리 등을 방해한 점을 정씨도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가담까지 했다며 모녀의 ’공모 관계’를 인정했다.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 의혹 사건의 재판부가 최순실씨와 정유라씨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 의혹 사건의 재판부가 최순실씨와 정유라씨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수정 부장판사)는 23일 최씨를 포함해 이화여대 특혜 의혹에 관련된 9명에게 모두 유죄 판결했다. 최경희 전 총장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학대학장은 징역 2년을,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류철균·이인성·이원준 교수에겐 집행유예를, 이경옥ㆍ하정희 교수에겐 각각 벌금 800만원과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 내용을 낭독하면서 정씨를 특혜 비리에 연루된 ‘공범’으로 표현했다. 청담고 재학 시절 최씨가 허위로 서울시 승마협회장 명의의 40시간짜리 봉사활동 확인서 등을 받아 제출하고 전국승마대회 출전 명목으로 5일간 출석한 것처럼 처리하는 과정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와 변호인들은 정씨가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허위 봉사활동 확인서에 서명을 한 점 등을 볼 때 최씨와 정씨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정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과 비슷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누구든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상응하는 정당한 결과를 얻으리라는 말 대신 ‘빽도 능력’이라는 냉소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생기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씨는 지난 2014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검찰은 정씨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같은 혐의를 모두 포함했지만, 구속영장 발부로 이어지진 못했다.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추가된 혐의를 포함한 범죄사실의 내용, 피의자의 구체적 행위나 가담정도와 그에 대한 소명의 정도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최씨 모녀의 공모관계를 인정함에 따라 정씨에 대한 수사와 향후 재판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졋다.

실형을 선고받은 최씨는 선고 내내 숙였던 고개를 한동안 들지 못했다. 법정에 입장하면서 취재진 등 방청석에 앉아있는 수십여 명을 매섭게 노려봤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공소사실 무죄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고지하길 원하냐는 재판부의 질문에도 고개만 내저었다.최씨가 법의 첫 심판을 받은 이날은 공교롭게도 최씨의 생일이었다.

다만 대한승마협회 실제 공문을 캡쳐하고 직인을 오려내 붙이는 방법으로 허위로 가짜 대한승마협회 공문을 만들려 한 혐의(사문서위조미수)에 대해서는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실제 문서로 만들었다고 볼만한 증명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 전 총장과 김 전 학장 등 이화여대 교수들에 대해서도 “교육열과 취업난에 성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대학생, 학부형이 품게 된 불신도 적다고 할 수 없고, 이른바 ‘명문 대학’으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화여대를 사랑하고 아꼈던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의 분노도 적지 않다”고 꾸짖었다.

&#39;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39; 사건 관련자들이 23일 오전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실씨,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류철균 교수. [연합뉴스] <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 사건 관련자들이 23일 오전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실씨,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류철균 교수. [연합뉴스] <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최 전 총장에게 “이화여대의 대표이자 책임자임에도 사회 유력인사 딸이 지원한 것을 알고 공명정대한 학사 관리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며 “이는 스스로 주창했던 ‘경쟁력 있는 이화’ ‘혁신 이화’라는 지향점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했다.

최 전 총장을 비롯해 징역형 이상을 받은 교수들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에 따라 퇴직급여와 연금이 50%로 줄어드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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