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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특수하지 않은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쌈짓돈' 특수활동비 대수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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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가 수술대에 오른다. 규모를 대폭 삭감하고, 사용에 대한 투명성 강화 방안을 마련한다. 특수활동비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돼 ‘눈먼 돈’으로 불린다. ‘검찰 돈 봉투 만찬’에 특수활동비가 쓰인 거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됐다.

기재부, 각 부처에 특수활동비 실태 점검 착수 #기밀 필요없으면 전액 삭감 또는 일반 예산으로 변경 #지난해 특수활동비 규모 8870억원..삭감 규모 8월 결정 #특수활동비 투명성 강화 방안도 마련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부처를 대상으로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부처의 실 국별ㆍ분기별 특수활동비 집행 현황 및 부처 내부의 특수활동비 사용 지침 등이다.
기재부는 이를 토대로 특수활동비 집행 실태를 점검하고 기밀이 요구되지 않는데도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사용하는 항목에 대해 전액 삭감하거나 다른 일반 예산항목으로 변경한다는 방침이다.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기타업무경비 등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8월 중순께 특수활동비의 전체 삭감 규모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9월에 확정될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기관 특수활동비

주요 기관 특수활동비

정부는 이와 함께 특수활동비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기재부는 각 부처에 특수활동비 사용 개선 방안도 함께 요청했다. 각 부처는 내부적으로 특수활동비 사용 체계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법무부 기획조정실과 검찰국, 대검 기획조정부 등은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지난 19일 첫 회의를 열었다.

사용 증빙은 감사원의 ‘특수활동비 계산증명 지침’을 따르게 되는 데 지침에는 “특수활동비의 사용처를 공개할 경우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이 방해받는다고 판단하면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가능”이라는 내용도 있다.

이렇다 보니 특수활동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일반적인 기관운영 경비 등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15년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현황 중 ▶체류 외국인 동향조사(73억7100만원) ▶수용자 교화활동비(11억8000만원) ▶소년원생 수용(1억3800만원) ▶공소유지(1800만원) 등이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사용됐다.

국회의 경우 ▶위원회 활동 지원(15억5000만원) ▶입법활동 지원(12억5200만원) ▶입법 및 정책 개발(19억2600만원) 등의 항목에서 특수활동비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감사원, 국무조정실, 대법원, 외교부, 통일부 등도 국정 수행활동, 주요시책 실태점검, 자문위원 지원 등에 특수활동비를 편성했다.

주요 기관 특수활동비

주요 기관 특수활동비

최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면직으로 이어진 ‘돈 봉투 만찬’에서 이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무부와 검찰 합동감찰반의 감찰 결과 이 자리에서 주고받은 돈의 출처가 특수활동비로 확인됐다. 이에 참여연대는 지난 15일 특수활동비 예산을 편성한 기관을 대상으로 특수활동비 집행 지침, 집행계획의 수립 여부 등을 공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특수활동비는 정보 수집이나 사건 수사를 하는 정부 부처가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경비다.  납세자의 세금으로 마련된다. 문제는 기밀을 명목으로 사용처를 미리 정하지 않는 데다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사용 후 영수증 처리 등 증빙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다. 그래서 ‘깜깜히 모르는 예산’이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특수활동비 편성액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 2012년 8382억원에서 2014년 8672억원, 지난해 8870억원 등이다. 올해 특수활동비 편성 규모는 8939억원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최근 법무부의 ‘돈 봉투 만찬’ 사례와 같이 일부 고위 관료들이 당초 특수활동비 취지와 다르게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국민의 세금인 특수활동비가 통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 납세자가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이유는 세금이 공공재로 돌아오지 않고 중간에서 낭비되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자발적인 성실납세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보기관 이외의 특수활동비는 조속히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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