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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유족에 애도·사과" 경찰청장 581일 만의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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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고(故) 백남기씨에게 사과했다.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백씨가 쓰러진 뒤 1년 7개월 만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16일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2015년 민중총궐기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님과 유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청장은 “앞으로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 배치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사건 1년 7개월 만에 경찰의 첫 공식 사과 #이철성 경찰청장 "앞으로 살수차 배치 안해" #서울대병원 '외인사'로 사인 변경이 결정적 #"처벌·진상규명해야 제대로 된 사과" 주장도

경찰은 열흘 전까지만 해도 객관적인 사실 규명 이후 사과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수사 결과 경찰의 잘못이 명백히 밝혀지면 유족들에게 사과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15일 백남기씨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수정하면서 바로 이튿 날인 16일 사과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직접적 사인을 급성신부전과 패혈증,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수정하고 그 원인을 '물대포'라고 해석했다.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20170616/경찰청/박종근]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이 청장이 인사말을 하던 도중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20170616/경찰청/박종근]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이 청장이 인사말을 하던 도중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사과를 앞두고 생각에 잠긴 이철성 경찰청장. 이 청장은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박종근 기자

사과를 앞두고 생각에 잠긴 이철성 경찰청장. 이 청장은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통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박종근 기자

이철성 청장은 이 자리에서 과거 경찰의 잘못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이 청장은 “지난 9일 박종철 열사 기념관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과거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경찰의 인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행사돼야 한다.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오늘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과거 아픔이 재발되지 않고록 인권 경찰이 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경찰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경찰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경찰 활동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책임자 징계 등에 대한 이철성 청장의 별도 언급은 없었다. 징계 수위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 내부 분위기다. 백남기씨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는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뀐 서울대병원의 새 사망진단서를 분석한 뒤 백씨가 외인사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징계 수위와 관련돼 결정된 건 없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백남기투쟁본부 “진정성 전혀 느껴지지 않아”

지난해 10월 백남기씨 부검영장 집행을 두고 대치 중인 경찰과 백남기투쟁본부 관계자들.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백남기씨 부검영장 집행을 두고 대치 중인 경찰과 백남기투쟁본부 관계자들. [중앙포토]

하지만 백남기투쟁본부 측은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투쟁본부 측은 △경찰 자체 진상조사 결과와 징계에 대한 계획 △사건당일 청문감사보고서 공개 △시신탈취와 강제부검 시도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살수차 등 위해성 장비 법제화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 등을 요구했다.

투쟁본부 측은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이 청장에 말에서는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유족 앞이 아닌 기자들 앞에서 ‘경찰 개혁위원회’라는 것을 발족하며 사과를 하는 것 또한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며 비판했다. 또 “경찰이 진정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하게 사과하겠다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우선이다. 민중총궐기 당시 진압을 명령하고, 살수를 명령하고, 살수를 행한 강신명,구은수등의 경찰 책임자들이 처벌되지 않는 한 경찰이 책임과 사과를 다 했다고 볼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미 사과의 유효기간은 지났다. 백남기 농민이 살아계실 때 그리고 지속적으로 국회에서 사과 요구를 했을 때 사과를 했어야 효용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한걸음 진전했다고 보이나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충분하지 않았다. 진상 규명, 책임 추궁 등 정의 실현, 효과적인 배상,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이 병행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령' 신설, 바뀌는 살수차 규정

살수차 시연을 하는 경찰. [중앙포토]

살수차 시연을 하는 경찰. [중앙포토]

살수차 사용을 않겠다는 수장의 발표에 따라 경찰은 조직 차원에서 관련 규정 법제화에 나섰다.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에 관한 규정’에 살수차 사용기준을 신설하고, 기존 ‘살수차 운용지침’도 개정하기로 했다.

신설될 대통령령 규정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에 관한 규정’에 신설될 내용의 가장 첫 머리에는 살수차 사용 금지 조항이 들어간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수 없다는 선언적 규정이다. 다만 시위대가 화염병ㆍ쇠파이프ㆍ각목ㆍ돌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타인 또는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공공 재산을 손괴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도로 무단점거 시 살수 가능 △불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이 예상되는 경우 살수 가능 등의 요건은 삭제했다.

한계 수압 역시 하향된다. 현행 15 bar(압력단위)에서 13 bar로 낮추겠다는 거다. 이는 OECD 최저수압이라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OECD에서 살수차를 사용하는 나라 20개국이다. 최대수압은 국가별로 다른데 독일ㆍ영국ㆍ프랑스는 20 bar, 일본 17 bar, 이탈리아 13 bar 등 이다”며 “우리도 OECD 최저 수준인 13 bar로 낮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리별 수압 규정도 완화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20m 거리에 있는 시위대에게는 7 bar 내외의 수압이 허용됐지만 앞으로는 5 bar로 제한된다.

경찰 내부지침인 ‘살수차 운용지침’도 강화한다. 기존 살수차 사용명령권자는 관할 경찰서장의 위임을 받으면 됐지만, 앞으로는 지방경찰청장의 위임을 받아야 한다. 살수차 사용 경고 규정도 강화해 3회 이상 경고방송 의무화 등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또 살수차 요원 교육강화 차원에서 연간 2회 실시하던 살수차 검열을 4회로 늘린다.

사과 발언 나온 '경찰개혁위원회'는 어떤 곳?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을 통해서다. 박종근 기자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사과했다.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을 통해서다. 박종근 기자

이날 발족식을 한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이 개혁을 위해 외부 인권 전문가들을 초빙해 만든 조직이다. 수사구조개혁 등 주요 과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 따라 조직 내부 입장을 벗어난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만들어졌다.

경찰혁신위원회는 인권보호·자치경찰·수사개혁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활동한다. 초대 유엔 한국 인권대사를 지낸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분과별로 6명씩 18명의 위원을 둬 모두 19명으로 구성됐다. 각 분과별 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날 경찰혁신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게 된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죄를 시작으로 경찰개혁 과업을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백남기씨 사인 논란 일지

백남기씨의 영정. [중앙포토]

백남기씨의 영정. [중앙포토]

2015년 11월 14일 :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씨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2016년 9월 12일 :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청문회에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사과는 적절치 않다” 발언

2016년 9월 25일 : 백씨 서울대병원에서 사망

2016년 10월 3일 : 서울대병원 “병사로 기록한 사망진단서 관련해 정치적 외압 없었다” 발표

2016년 10월 23일 :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 실패

2017년 6월 15일 : 서울대병원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한다. 정치적 외압 없었다” 발표

2017년 6월 16일 : 이철성 경찰청장,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공식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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