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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지킴이 타일러 라쉬 “판다만큼 귀여운 저어새 보고왔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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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기금(WWF) 한국지부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6일 강화도에서 저어새를 탐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세계자연기금(WWF) 한국지부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6일 강화도에서 저어새를 탐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저어새 하는 짓이 귀여운 바보 같죠. 만화로 만들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될 거예요.”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외국인’ 타일러 라쉬의 맘을 빼앗은 주인공은 여름철새인 ‘저어새’다. 주걱처럼 생긴 검은 부리를 얕은 물속에 넣고 좌우로 휘휘 저으며 먹이를 찾는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지난 6일 타일러 라쉬는 강화도 일대에서 진행된 ‘WWF 저어새 탐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2016년 5월부터 WWF 한국지부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두 번째로 참가한 멸종위기종 서식지 보전 여행이다. WWF는 1961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비영리 환경보전기관으로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500만 명 이상의 후원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과 독특한 생태계와 서식지 보전, 인류의 영향 감축 등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 이 단체의 목적이다.

“작년 겨울엔 두루미를 보러갔어요. 하지만 두루미가 워낙 인기척에 예민해서 오래 지켜볼 수 없었는데, 저어새는 좀 둔하네요.”(웃음)

6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세계자연기금(WWF) 탐조 프로그램에서 만난 저어새. 주걱처럼 생긴 검은 부리로 얕은 물속을 휘휘 저어가며 먹이를 잡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강정현 기자

6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세계자연기금(WWF) 탐조 프로그램에서 만난 저어새. 주걱처럼 생긴 검은 부리로 얕은 물속을 휘휘 저어가며 먹이를 잡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강정현 기자

2017년 동아시아 서식지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3000여 마리만 남은 것으로 알려진 저어새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선 멸종위기 1급 천연기념물 205호로 지정돼 있다. 번식기인 4월~6월이면 뒷머리에 황금빛 장식깃이 생기고 가슴 윗부분에도 황금빛 털이 자라며, 갯벌·강하구·논습지 등의 생태계를 고루 갖춘 강화도를 찾아 짝을 짓고 알을 낳는다.

“저어새는 백로랑 짝지어 다닐 때가 많대요. 서로 돕는 관계죠. 고개를 물에 처박고 있을 때가 많은 저어새에게 외부의 위험 신호를 알려주는 게 백로라고 해요. 대신 저어새가 논바닥을 휘저어서 풀 사이에 숨은 물고기를 찾아내면 백로가 냉큼 잡아먹는대요. 어리바리 착한 저어새, 뺀질대지만 똘똘한 백로, 멋진 친구사이죠?”

6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세계자연기금(WWF) 탐조 프로그램에서 만난 저어새가 멋지게 비행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6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세계자연기금(WWF) 탐조 프로그램에서 만난 저어새가 멋지게 비행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면적의 74%가 산림인 미국 버몬트주 출신의 타일러는 평소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환경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WWF 홍보대사를 맡고 정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그 중 하나가 만화·아동서적을 위한 캐릭터 만들기였어요. 판다처럼 귀엽게 생긴 동물들은 사람의 관심을 더 끌죠. 멸종위기 동물 중 한국만의 개성 살릴 수 있는 동물을 캐릭터화 해서 환경보전 의식을 전달한다면 홍보 효과는 더 높아질 거예요. 특히 저어새는 논·갯벌 등 한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갖고 있어서 더 친근하죠.”

그동안 타일러는 ‘비정상회담’ 출연진들과 함께 다음TV·JTBC 생중계로 ‘어스아워(지구촌 1시간 전등끄기 캠페인)’ 현장 스케치를 진행하거나 각종 무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WWF 관계자는 타일러의 강의가 생활밀착형이라 이해가 쉽다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과소비가 계속 되면 불어나는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월급을 미리 끌어다 쓰게 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가계의 미래가 무너지듯, 우리는 매년 지구의 미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환경문제는 국가·기업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조금 비싸더라도 MSC인증(지속가능한 수산물 규정에 따라 어획된 ‘착한 수산물’) 제품을 살 줄 아는 소비자가 늘면 기업은 따라올 수밖에 없거든요.”

타일러는 이번에도 역시나 자신의 경험을 들면서 소비자와 기업 간의 관계에 대해 쉽게 설명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제의했는데 잘 안됐어요. ‘FSC(합법적 벌목으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하고 생산에서 재생까지 모든 과정이 친환경적으로 이뤄진 제품 인증) 종이’로 책을 만들자는 제 조건을 받아들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죠. FSC인증을 받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거든요. 어떤 출판사는 아예 ‘그러면 타일러씨가 가져갈 돈이 별로 없을 텐데요’라고 하더군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을 위해 우리가 지갑을 연다면 기업들의 선택도 좀 더 가치 있는 쪽으로 변화하겠죠.”

더불어 타일러는 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제안했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샤워시간을 단축하고. 특히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육식을 줄이는 것이 지구 환경보전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육류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 가스는 채소의 24배에 달한다.

WWF 홍보대사는 정해진 임기가 없다. 타일러 역시 앞으로도 실행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다고 했다. “생태계에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과학을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예능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있는데, 누가 빨리 가져갔으면 좋겠어요.”(웃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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