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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왜 로봇 회사를 소프트뱅크에 팔까…글로벌 기업들의 로봇 M&A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로봇 '와일드캣'. [사진 뉴욕타임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로봇 '와일드캣'. [사진 뉴욕타임스]

발로 차도 사람처럼 비틀거리다 균형을 잡는 로봇,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로봇, 10m 높이를 한 번 점프하는 로봇….

구글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4년만에 소프트뱅크에 매각 #앤디 루빈 떠나자 "로봇 상용화 무리" 등 구글 내에서 갈등 증폭 #'페퍼'로 성공한 소프트뱅크, 로봇 기업 연달아 인수하며 사업 박차 #'아마존 로보틱스' 세운 아마존, 로봇 경진대회 열어 인재 유치

미국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로봇들은 출시될 때마다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이 회사의 고객사 리스트는 세계 그 어느 기업보다도 빵빵하다. 1992년 MIT에서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미 국방부ㆍ미항공우주국(NASA)ㆍ하버드대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곳들의 지원을 받았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지난 9일 일본 통신사 소프트뱅크에 로봇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매각했다. 양사는 계약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세계 최대 IT 기업인 구글은 왜 세계 최고 로봇 회사를 일본 최대 통신 기업에 팔았을까.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 4년간 구글에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개발한 앤디 루빈이 이 회사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구글이 로봇 사업 비중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됐다. 루빈은 로봇 회사 8곳을 인수하면서 “로봇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의 인조인간 ‘리플리컨트’ 같은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빈이 구글을 떠나면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불과 1년 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당장 구글 내에서 로봇 사업에 대한 비관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 발 달린 로봇은 구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봇이 아니다”,. “당장 10년 안에 로봇을 상용화하는 것은 무리다”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마침 구글내 인공지능(AI) 사업은 한창 탄력을 받고 있을 때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임원들과 구글의 다른 로봇 엔지니어들의 갈등설도 나왔다. 로이터ㆍLA타임스 등 외신들은 “데이터와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판매하는 구글의 알파벳에게 로봇은 아무 가치를 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매각설이 나온지 약 3년만인 지난 9일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곳은 다름 아닌 일본 통신사 소프트뱅크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도 눈독을 들였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내놓은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일본 소프트뱅크가 내놓은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구글이 로봇 시장에서 주춤거리는 동안 소프트뱅크는 산업용·개인용 로봇 시장을 잡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다. 2014년 출시한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감성로봇 ‘페퍼’의 성공으로 자신감도 얻었다. 19만8000엔(약 204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은 사람과 대화가 능숙하지 못하지만 ‘로봇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총 1만대 넘게 팔렸다.

손 회장은 2012년 프랑스 로봇 기업 알데바란 로보틱스를 인수한 뒤 소프트뱅크로봇홀딩스(SBRH)를 설립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도 SBRH에 각각 1300억원씩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번에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 일본 로봇 기업 ‘샤프트’도 동시에 인수했다. 샤프트의 로봇은 미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PRA)가 꼽은 세계 최고 로봇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사진 소프트뱅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이번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수 사실을 발표하며 “2040년이면 스마트 로봇이 인류보다 많아질 것”이라며 “로봇이 다음 단계의 정보 혁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9월 영국 반도체 제조사 ARM을 310억 달러(약 35조원)에 인수한 것도 인공지능(AI)ㆍ가상현실(VR)ㆍ로봇 등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였다.

구글과 소프트뱅크 사례에서 보듯 인수합병(M&A)은 로봇 시장에서 단시간에 역량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메이디(美的)그룹은 지난해부터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기업인 독일의 쿠카 로보틱스의 지분을 매입해왔다. 지난 3월 메이디그룹은 ‘로봇 굴기’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독일 정부를 뒤로 하고 쿠카를 최종 인수했다. 쿠카의 한 해 매출은 30억 유로(약 3조8000억원)가 넘는다. 메이디그룹은 지난 2월에도 이스라엘 로봇 솔루션 업체 서보토닉스를 인수했다. 가전 업체에서 로봇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다.

아마존은 아마존로보틱스라는 로봇 개발 자회사를 따로 두고 있다. 사진은 물류 창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로봇 '키바'의 모습. [유튜브 캡처]

아마존은 아마존로보틱스라는 로봇 개발 자회사를 따로 두고 있다. 사진은 물류 창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로봇 '키바'의 모습. [유튜브 캡처]

유통 기업인 아마존도 로봇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자회사 ‘아마존 로보틱스’를 따로 두고 있다. 아마존은 2012년 7억7500만 달러(약 9000억원)에 인수한 물류 자동화 기업 ‘키바’를 인수해 바퀴 달린 로봇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2015년 키바를 아마존 로보틱스로 이름을 바꾼 뒤 차세대 물류 로봇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인간이 조종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의해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 4만5000대가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5년부터 세계 각지를 돌면서 '물류 로봇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MIT·프린스턴대 등 미국 명문대 소속 '로봇 인재'들이 앞다퉈 이 대회에 참가한다. 이 같은 대회를 개최하는 데는 아마존이 로봇 인재들을 스카우트하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M&A)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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