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터 곡예 부리는 국민의당…호남민심과 야당 존재감 사이에서 줄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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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야당으로서 정체성과 호남 민심 사이의 딜레마로 고심하고 있다. 국회 내 존재감은 커졌지만, 반대로 당의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가운데)이 9일 국회 부의장실을 방문한 전병헌 정무수석(왼쪽 둘째)과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가운데)이 9일 국회 부의장실을 방문한 전병헌 정무수석(왼쪽 둘째)과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국민의당은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존재감 부각에 성공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국민의당이다. 이런 이유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민의당에 대한 구애 작업을 펼치고 있다.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반대입장을 정한 후 국민의당 의원들에게는 민주당 의원들이 전화가 쇄도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8일 의원총회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무조건 후보자만 감싸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내 존재감 부각에는 성공했지만 떠나간 호남 민심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7~8일 전국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당의 호남 지지율은 11%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주 조사 결과(14%)보다 3%포인트 하락했고,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64%)에는 크게 뒤졌다.

국민의당 내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역의 지지를 다시 찾지 못하면 당이 존폐의 갈림길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당이 대선 후에도 구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기대와 민주당에 돌아가더라도 친문재인 패권주의가 언제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지방선거 때 참패하게 되면 국민의당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당은 매번 결정마다 수 싸움을 하고 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경우 ‘호남’이라는 지역적 상징에서 찬성 입장을 택했고, 김상조 후보자의 경우 ‘재벌개혁’이라는 당의 노선 때문에 찬성 쪽으로 기운 상황이다. 반면 강경화 후보자의 경우 도덕성과 능력 부족을 이유로 보고서 채택 거부 쪽에 섰다. 국민의당의 한 여성 의원은 “강 후보자의 경우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한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8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김동철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회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당이 8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과 김동철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회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하지만 수싸움이 계속됨에 따라 국민의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한 재선 의원은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사이를 왔다갔다하다가는 양쪽 모두에게서 외면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자유한국당에서는 정우택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직접 나서 “사쿠라 정당”, “민주당 2중대”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국민의당이) 무리한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9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준여당’을 선언했는데 매우 반가운 말씀”이라며 “국민의당이 사사건건 발목 잡는 야당과 달리 통 큰 협치를 보여주리라 기대하지만, 강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결론을 내린 점은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내에는 "무조건 민주당의 뜻을 따르냐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박지원 전 대표는 “집권여당의 대표는 꼬인 정국을 풀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며 “사사건건 승리하고도 국민의당 속을 뒤집는다면 대통령을 돕는 당대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거대 여야의 대립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국민의당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적당한 선에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당이 거대 양당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잘 해나고 정부·여당에도 지속적으로 협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국회 정무위는 국민의당이 찬성 쪽으로 돌아섰음에도 한국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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