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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 못 준다는 박삼구 … 우선매수권 뺏겠다는 채권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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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호타이어의 새 주인 찾기가 ‘네버 엔딩 스토리’다. ‘상표권 불허’로 막판 버티기에 들어간 박삼구(사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우선매수권 박탈’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 회장은 9일까지 채권단에 상표권 사용 허용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9550억 마련 여력 없는 박 회장 #컨소시엄 구성안 결국 거부되자 #‘상표권 불허’ 들고나와 버티기 #산은, 경영권 회수 방안도 고려

금호타이어 매각 작업이 복잡하게 된 것은 금호타이어에 대한 박 회장의 집념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3월 중국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 가격은 9550억원. 금호타이어의 원래 주인이었던 박 회장이 ‘9550억원+1주’를 내면 금호타이어를 되찾을 수 있다. 문제는 돈. 박 회장 개인은 이 정도 돈을 마련할 여력이 없다.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여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했다. 그런데 우선매수권은 박 회장 개인에게 부여된 권리다. 컨소시엄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 회장은 그러자 인수자인 더블스타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더블스타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대금을 마련했다. 그러니 박 회장 자신도 컨소시엄 구성하는 걸 허용해 달라고 채권단에 요구했다.

마침 문제가 불거진 4월은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기간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중국업체로의 매각에 우려를 나타냈다. 정치권의 미묘한 기류에 국책은행인 산은은 “컨소시엄 절대 불가”에서 “일단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면 허용 여부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선 (컨소시엄) 구성 후 허용’이다.

박 회장은 그러나 ‘선 허용 후 구성’을 요구했다. 허용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컨소시엄에 참여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산은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 행사 기한이 만료되면서 금호타이어는 더블스타에 팔리는 것으로 결론나는가 싶었다.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표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 1조원 가까운 매각 가격에는 ‘금호’라는 브랜드 가치가 포함됐다. 더블스타 입장에선 금호 브랜드를 쓸 수 없으면 굳이 그 가격에 살 이유가 없다.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에 있다. 금호산업은 박 회장의 지배하에 있다.

더블스타가 인수를 포기하면 매각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은 다시 부활한다. 금호타이어를 되찾을 길이 열리는 셈이다.

산은은 상표권 문제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이다. 당장의 압박 수단은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채권이다. 지난해 말이 만기였지만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매각을 원활히 마무리 짓는다는 조건에서 6월 말로 연장해줬다. 다시 같은 조건으로 이 채권을 9월(더블스타와의 매각 협상 종료 시한)로 연장해 줄 계획이었는데, 상표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만기연장이 어렵다는 뜻을 최근 박 회장에게 통보했다. 이 채권이 만기연장되지 않으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재무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경영권 회수도 고려 대상이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영업이익률은 4.1%다. 경쟁사인 한국타이어(16.7%)나 넥센타이어(13.1%) 등에 크게 못 미친다. 1분기에는 28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산은 관계자는 “타사 대비 유독 금호타이어의 실적이 악화된 원인은 박 회장의 경영 실책”이라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상표권 문제로 매각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은 일종의 매각방해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매각방해행위를 하면 우선매수권을 박탈할 수 있다.

박 회장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다만 “상표권은 금호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박삼구 회장 개인에 대해 매각방해행위라며 우선매수권을 박탈하는 게 법리적으로 맞는지는 따져볼 문제”라고 말했다.

고란·윤정민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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