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사정기관, 트럼프에 맞서는 코미에게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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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중단 요구를 받았다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폭로가 터져 나오면서 미국 정계가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코미 전 국장의 주장이 맞다면 이는 탄핵으로까지 연결될 중대한 사법방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8일(현지시간) 청문회에 앞서 전격적으로 공개된 코미의 모두발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내통 혐의를 받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사정기관의 독립이란 사회의 부패를 막아 주는 소금과 같은 절대 불가결한 원칙이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미국에서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FBI 국장에게 대놓고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니 귀를 의심할 일이다. 아직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미 의회에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절차가 시작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한 최고 권력자의 반민주적 행태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새로운 충격적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도 작지 않아 트럼프의 앞날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심각한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고 트럼프가 곧 권좌에서 내려오진 않는다. 온갖 논의가 필요한 만큼 탄핵 여부 결정까지는 2년은 걸릴 거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통과 직전 스스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의 경우도 도청 사실이 발각된 뒤부터 물러나기까지 2년이 걸렸다.

탄핵 개시 여부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최고 권력에 대해 당당히 맞서는 코미의 모습이다. 그간 우리는 힘깨나 쓴다는 검찰과 국세청 등이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이들의 주구가 돼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하는 작태를 너무도 많이 목격해 왔다. 선진국일수록 국가권력을 분리시켜 상호 견제·억제하게 함으로써 균형 있는 안정을 이루는 ‘체크 앤드 밸런스’가 가장 핵심적인 통치원리다. 우리의 사정기관과 구성원들도 이번 트럼프 사태를 눈여겨보면서 살아 있는 권력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