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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발기부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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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4면

新 부부의사가 다시 쓰는 性칼럼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너까짓 게 무슨~.”

30대 남성 J씨는 마침내 그런 표현을 되뇌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아버지의 사망 후 발기부전에 빠진 형태다. 그의 말에 필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는데, J씨가 그런 표현을 했다는 것은 소위 봇물이 터진 것이다.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얘기했죠. 학교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대학입시에 취직시험에 실패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난히 소심하고 감정표현 없던 J씨가 처음부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낸 건 아니다. 전혀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던 J씨는 필자의 분석이 반복되면서,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비난과 그 감정적 상처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렵게 고학한 부친은 유달리 성공에 집착했고, J씨가 강인하지 못해서 늘 주눅 들어 있다며 채근하기 바빴다. 그런데 사실 부친의 부정적 표현은 훈육이라기보다 정서적 학대였다. 적당한 수준의 지적과 훈육은 아이의 성장에 도움될 수 있지만,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극단적 비난은 아이의 남성성을 철저히 짓밟았다. 아버지의 비난은 아이의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줬고, 그렇게 성장해 왔던 J씨. 아버지는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며 J씨의 직장생활도, 연애도 수 차례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젠 아버지의 비난도 없는데 왜 거꾸로 발기가 안 되죠?”

자신을 주눅 들게 했던 부친은 중병으로 사망했고, 부친의 생전엔 큰 문제가 없던 성기능이 별안간 불안정해지자 그는 답답해 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발기부전으로 빠진 신체적 원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J씨 사례는 남성성의 모델이자 경쟁 대상인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강했고, 아이의 정서적 성장은 철저히 좌절됐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J씨의 내면엔 분노와 좌절의 병적인 양립이 깨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사망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여전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코드는 살아 있다. 게다가 이미 습관화된 비난과 좌절의 고리는 아버지가 퇴장하면서 함께 사라지지 못한 채 상처받아 왔던 영혼은 이제는 스스로 좌절과 비난을 찾고 있는 셈이다. 마치 만성적 학대에 멍든 사람이 가해자가 사라지면 자기학대에 빠지듯 말이다.

J씨는 필자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의 고리를 풀면서 성 반응도 되찾고 이젠 스스로 선택한 여성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의 진료실엔 J씨처럼 아버지의 사망 후 문제가 불거진 사례들이 꽤 있다. 생전 외도를 일삼았던 나쁜 아버지의 사망 후 원래 얌전했던 아들이 병적인 외도에 빠져들거나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멍들고 폭력을 혐오했던 아들이 엉뚱하게도 아내에게 가학적 성행위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이  바로 건강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슬픈 흔적이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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