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국회의원의 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그래, 니들끼리 다 나눠 먹어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현직 국회의원 4명을 새 정부 장관에 지명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런 시니컬한 반응이 적잖게 터져나왔다. 무더기 의원 입각은 파격과 참신을 내세운 유엔 출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와 ‘삼성 저격수’라던 김상조(교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가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 등 이른바 ‘5대 비리’라는 암초를 만나 뜻밖의 위기에 몰리자 청와대가 내민 카드다. 후보자 개개인의 역량 평가에 앞서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오는 건 국회의원들 끼리끼리 봐주는 ‘현직 예우’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의 표시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좌우 정권을 막론하고 현직 의원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번에도 예외 없이 동료 의원들의 ‘무딘’ 검증으로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니 말이다.

실제로 의원 입각은 과거 정부들에서도 내각 인선에 난항을 겪을 때마다 청와대가 들이밀고 의원들이 좋아라 하며 받던 꽃놀이패였다. 2014년 김명수 후보자 낙마 당시에도 현직 의원인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인선으로 무난히 청문회를 넘어섰고, 이후 유기준·유일호 장관 모두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은 “선거를 통해 검증이 됐다”고 주장하지만 흠결이 없어서라기보다 동료 봐주기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별로 없다. 다른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에게 하듯 혹독한 도덕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다면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끼리끼리 봐주기 외에도 의원 입각은 생각해 볼 문제가 더 있다. 그중 하나가 겸직 문제다. 국무위원 겸직은 법적으론 아무 하자가 없다. 하지만 내각제도 아니고 엄연히 3권분립에 기초한 대통령중심제를 하는 나라에서 아무런 권한 제한도 없이 의원들이 내각을 차지하는 건 그저 국회의 행정부 장악 같아 찜찜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데 유독 국회의원들만 제 머리 깎을 전권을 움켜쥐고 있으니 벌어지는 일들 아닐까. 겸직에 따른 권한 제한을 비롯해 선거 때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각종 특권을 내려놓는다고 약속하지만 매번 공염불에 그친다 .

의원들은 틈만 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문제 삼고 적폐 청산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과도한 인사 견제권을 쥐고는 행정부까지 장악한다. 이러니 ‘국회의원의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지.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