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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소설가 성석제 vs 시인 최승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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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소설가 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 출생▶86년 '문학사상'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소설집'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장편소설'왕을 찾아서''인간의 힘'등▶97년 한국일보문학상.2000년 동서문학상.2002년 동인문학상▶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저녁의 눈이신'

*** 시인 최승호

▶1954년 춘천 출생▶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시집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회저의 밤''그로테스크'등▶82년 오늘의 작가상.85년 김수영문학상.90년 이산문학상.2000년 대산문학상.2002년 현대문학상 수상▶미당 문학상 후보작 '중생대의 뼈' 외 12편

시인 최승호(49.사진(右))씨는 소설가 성석제(43)씨를 보자마자 "바둑 한 판"을 불렀다. 아마 5단으로 문단에서 전문기사로 불리는 성씨가 빙긋 웃었다. 3급인 최씨는 "하수의 설움"을 토로하면서도 한 시간에 걸쳐 성씨와 진득진득 놀고 나더니 돌을 던지며 "머리 잘 식혔네"라며 손을 털었다.

"넘어져도/흙 묻은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가던 길을 그냥 가는 사람은/너그럽고 슬기로운 인물이다"('돌부리' 부분)라고 읊었던 시인답다.

최씨는"시인은 시쓰는 시간 속에서 머물다 가고, 독자는 제가 발견한 시 한 편 속에서 새로운 지평선을 일구다 가는 것, 바로 과정이 전부라고 보면 결론을 내리지 않는 건조한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쓸모는 없지만 존재하는 노을처럼, 무(無)와 공(空)을 앞에 두고 그는 "낙천적인 해골은 누군인가?"('거울' 부분) 물으며 걸어왔다. 부질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죽음과 허망의 찌꺼기를 붙들고 시인은 깨달음이 모두에게 '물의 책'처럼 흘러들기를 노래한다.

성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뒤 소설가가 되었는데 "시에 비견해볼 때 소설을 쓰는 일은 노동"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시가 웅크리며 펼치는 긴장과 응축의 세계라면 소설은 리듬을 타고 넘는 확산이 아닐까"라고 최씨가 한 수 두자, 성씨는 "시인에게 요새 시가 풀어졌다고 하면 욕이지만 소설가에게는 칭찬이죠"라고 받았다. 삶의 비의(秘意)를 매끈한 유리 감촉이 아닌 우툴두툴한 돌바닥으로 풀어온 성씨 소설은 시골 5일장처럼 싱싱하게 살아 달린다.

"경기는 끝났다. (…)선수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세비 역시 집으로 돌아갔다. 만장산 모퉁이를 도는 세비의 눈앞에 문득 샛별이 떠올랐다. 세비는 샛별이 하늘의 눈처럼 빛난다고 느꼈다. (…)세비는 목이 메어 고개를 숙였다"('저녁의 눈이신'부분)고 밀고 나가는 성씨 문체는 빠르고 날카롭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나갈 지역 대표를 뽑는 초등학교 축구경기를 그린 이 소설에서 성씨는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존득존득한 글쓰기로 펼쳐놓았다.

두 이야기꾼은 만날 때와 같이 바둑 얘기를 건네며 헤어졌다. "흑과 백, 돌이 평등하고 판이 끝나면 아침에 마당 비질하듯 깨끗이 처음으로 돌아가니 좋고"라며 최씨가 인사하자 성씨는 프로 기사들이 나누는 한마디로 점을 찍었다. "져주니까 이기더라."

글=정재숙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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