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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트럼프 해외순방 실패 활용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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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 주말 끝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트럼프 본인은 “순방 모든 곳(중동·유럽)에서 홈런을 쳤다”고 우쭐하지만, 말로만 듣던 ‘트럼프 스타일’을 접한 주요국 정상들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반응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실점 만회 나설 트럼프 #강 대 강 맞서기보다 포용의 제스처 필요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정상들과의 단체 사진 촬영에선 앞줄에 서기 위해 몬테네그로 총리를 밀쳐냈다. “국가적 망신”(워싱턴포스트)이란 자책이 나왔다. 또 나토의 근간인 “회원국에 대한 군사공격에는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상호방위조약 확언을 하지 않았다. 1949년 이래 처음이다. 당장 유럽에선 “이제 우리 유럽은 미국에 의존해선 안 되겠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실상의 ‘트럼프 포기’ 선언까지 나왔다.

그런 가운데 순방 기간 중 트럼프의 ‘굴욕 베스트 3’가 화제다. 프랑스의 젊은 신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지난 25일 트럼프와의 첫 대면에서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될 정도로 트럼프의 손을 거머쥐었다. 트럼프는 마크롱의 손아귀에서 두 번이나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원래 ‘악수로 기선제압’은 트럼프의 전매특허였다. 손에 힘을 꽉 주고 마구 흔들어대는 공격적 악수에 많은 세계 지도자들이 뜨악했다. 마크롱은 오히려 더 세게 손을 쥐어 기선을 제압했다. 39살과 70살의 승부는 금세 판가름났다.

또 마크롱은 나토 정상회의가 막 시작될 때 모여 있던 여러 정상 중에서 트럼프를 향해 가는 척하다 막판에 방향을 메르켈 쪽으로 틀었다.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하려던 트럼프가 손을 내리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 게 전 세계 TV에 생중계됐다.

마지막 굴욕은 다름 아닌 부인 멜라니아로부터였다. 이스라엘 공항에서의 환영행사 도중 멜라니아는 트럼프가 내민 손을 손목으로 찰싹 쳐냈다. 이름하여 ‘손목 스냅’. 뻘쭘해진 트럼프는 넥타이와 양복을 만지며 옷매무새 고치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음날 로마에 도착했을 때도 멜라니아는 트럼프의 손을 뿌리치고 손잡기를 거부했다. 이 장면이 화제를 끌면서 이번 트럼프 해외순방의 주인공은 돌연 멜라니아의 몫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교황의 냉랭한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녹인 것은 멜라니아”라 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긴장 관계였던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뛰어난 프랑스어와 역사 지식으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 중 처음으로 누드모델 경력이 있고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며 “의붓딸(이방카)보다 못하다”는 조롱까지 듣던 몇 달 전 상황과는 엄청난 반전인 셈이다. 하지만 “얼마나 트럼프가 형편없었으면 멜라니아가 부각됐겠느냐”는 비아냥이 대세다.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또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러시아와 비밀대화 채널을 구축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러시아 게이트’의 몸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의 짐이 되고 만 쿠슈너에 대통령 측근들이 ‘휴직’을 종용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트럼프로선 사면초가다.

트럼프의 첫 해외순방에 대한 혹평은 우리에겐 기회일 수 있다. 트럼프는 3주가량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실점 만회를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트럼프로선 북한 문제 등 주요 쟁점에서 한국과 손을 잡으려 할 것이다. 틀어질 경우 ‘외교 낙제 대통령’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이를 티 안 나게 교묘히 활용하는 궁리가 필요하다. 아쉬울 것 없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강 대 강’으로 맞서는 전략보다는 이번 회담에선 공통분모를 다지는 안전 노선으로 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코너에 몰린 트럼프의 거센 악수에도 힘으로 맞서기보다 환하게 양손으로 맞잡는 포용의 제스처를 보이는 게 두고두고 득이 될 듯하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