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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재인 구두' 만들고 폐업…제조사 전 대표의 아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제36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낡고 밑창이 찢어진 구두를 신고 참석했다. 당시 사진이 한 네티즌의 카메라에 포착돼 뒤늦게 알려졌다.

‘문재인 구두’ 만든 ‘구두 만드는 풍경’ 유석영 전 대표 # 5년 전 구두 사간 문 대통령이 다시 주문하자 눈물 # 4년 전 경영난으로 폐업한 것 모른 채 청와대서 주문 #"청각장애인 위해 가능하면 다시 구두 만들고 싶어" #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신은 구두를 청각 장애인 6명이 일한 구두제조업체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청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었던 이 회사('구두 만드는 풍경')가 경영난으로 3년간 운영하다 결국 4년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구입해 신고 있는 구두를 만들었던 '구두 만드는 풍경' 유영석 전 대표.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경기 의왕 '행복을 파는 가게' 물류센터에서 지난 28일 자신이 만들었던 구두를 들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구입해 신고 있는 구두를 만들었던'구두 만드는풍경' 유영석 전 대표.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경기 의왕 '행복을 파는 가게' 물류센터에서 지난 28일 자신이 만들었던 구두를 들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에 따라 대통령도 5년 넘게 신을 정도로 튼튼한 구두를 만든 사회적 기업이 왜 문을 닫아야 했던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사는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고,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AGIO)’를 생산, 판매했다.

이 회사를 설립한 유석영(55) 전 대표는 시각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그는 지난 14일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을 구두를 한 켤레 더 살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구두 회사를 4년 전 폐업해 이제는 안 만들고 있다.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답변한 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다. 회사가 없어진 가슴 아픈 회한이 한순간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20일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20일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유씨는 “5년 전인 2012년 9월 국회에서 판매행사를 할 당시 구두를 한 켤레 사간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대행)이 우리 구두를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신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당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아주 즐겁게 구두를 사고, 애로사항도 들어주셨다”고 기억했다.

유 대표가 구두 회사를 설립한 것은 2010년 1월 1일이었다. 앞서 2006년 11월 27일부터 파주시장애인복지관장을 맡아 오면서 청각장애인들이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힘겹게 지낸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왔다. 그러던 차에 1980년대만 해도 유명 메이커 구두회사의 생산직 사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상당수 근무했지만 어느새 대부분 사라진 사실과 청각장애인들이 구두 제조업 일에 잘 적응한다는 점도 파악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지역의 청각장애인 6명을 규합해 250㎡ 규모의 경량철골 구조물로 된 공장건물을 임대 내고, 40년 경력의 구두 제조 전문가를 어렵게 초빙해 회사를 차렸다. 3개월만에 5개 구두제품을 선보이며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친분이 있었던 유시민 작가 등이 모델을 해준 덕분에 출발이 외롭지는 않았다. 한 구두 디자이너가 자원봉사로 도와준 것도 큰 힘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구입해 신고 있는 구두를 만들었던 '구두 만드는 풍경' 유영석 전 대표.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경기 의왕 '행복을 파는 가게' 물류센터에서 지난 28일 자신이 만들었던 구두를 들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구입해 신고 있는 구두를 만들었던'구두 만드는풍경' 유영석 전 대표.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경기 의왕 '행복을 파는 가게' 물류센터에서 지난 28일 자신이 만들었던 구두를 들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껏 수제화를 만들면 전망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에서 자신이 있었다. 편안한 구두를 만들어 차별화하면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품질 고급화에 승부를 걸었다. 우수한 품질의 소 가죽(외피)과 돼지 가죽(내피)으로 수작업을 통해 수제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격을 낮춰 기계로 찍어내듯이 생산하는 메이커 제품 구두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힘겹게 경쟁해야 했다.

친분이 있던 유시민 작가 등 유명인사 몇명이 구두모델을 해준 것도 뒷받침이 됐다. 제품을 인정한 신세계 측이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을 시켜줄 정도로 진전도 있었다. 여기에다 전문기관의 검증을 거치는 설립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위치도 제품에 신뢰감을 더하고 사회적인 응원을 기대하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기업활동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선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라는 비뚤어진 인식을 넘기가 무엇보다 어려웠다. 이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자금 부족으로 신제품 개발에 한계도 컸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도 광고를 제대로 할 여력이 되지 않아 제품홍보가 항상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유행에 따라 수시로 신제품을 선보여야 하지만 매출 저조로 인한 자금부족으로 신제품 개발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회사 설립 3년 8개월만인 2013년 8월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유 전 대표는 "당시 일했던 청각장애인들이 원한다면 다시 모여 구두 회사를 다시 살리고 싶은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여 동안 어렵게 구두 제조 기술을 익혀 삶의 희망을 갖기 시작했던 청각장애인들이 다시 모여 꿈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며 힘없이 말했다.

그는 구두 회사를 폐업한 뒤 지난해 6월부터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행복을 파는 가게’의 원장직을 맡고 있다. 장애인들이 만든 사무용품 등 생산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일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지고 파주장애인복지관장직을 7년간 맡았고, 구두회사를 운영한 경험 등을 경기도로부터 인정받아 현재의 임무를 맡고 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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