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한 적 없는 신선한 공포의 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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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30면

의외의 선전이다. 할리우드의 저예산 공포 영화 ‘겟 아웃(Get Out)’이 한국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개봉 8일 만에 관객 120만을 돌파했다. 사실 개봉 전까지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다. 미국 흑인 코미디언이 만든 첫 영화에, 출연 배우들도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올해 2월 미국 개봉 당시 24시간 만에 제작비 450만달러(50억원)를 회수하는 성공을 거뒀다는 것과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점수 99%를 받았다는 소식 정도가 눈길을 끌었을뿐.

영화 ‘겟 아웃’ #감독: 조던 필레 #배우: 다니엘 칼루야 #앨리슨 윌리암스 #등급: 15세 관람가

여자측 부모님 집을 방문하는 커플이 주인공이다. 흑인 사진가 크리스(대니얼 칼루야)는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의 집에 가기로 한 후 “너희 부모님이 내가 흑인인 걸 아시냐”고 걱정한다. 로즈가 운전하던 차는 시골 도로에서 노루를 치고, 크리스는 죽어가는 노루를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염려와는 달리 로즈의 부모님과 동생은 크리스를 친절하게 맞아주며 지인들을 모아 파티를 열겠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이 집에서 일하는 흑인 관리인과 가정부의 어색한 말투와 행동이 마음에 걸린다. 임상심리학자인 로즈의 엄마가 금연을 도와주겠다며 한밤중에 거실로 불러 최면을 거는 등 이 집에서 크리스에게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의 첫 번째 궁금증, 무서운가. 외딴 동네의 낯선 주택을 방문한 주인공이 어떤 일에 연루되며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는 스토리는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영화 도입부에 관객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공포 영화 특유의 장면이 몇 번 등장하지만, 계속되는 건 아니다. 피와 살점이 튀는 슬래셔 무비와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 무섭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주인공의 불편함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이 감정은 주변인들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공포로 바뀐다. 마침내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과 마주하는 순간의 충격도 강렬하다.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쑥쑥 전개되니, 관객은 보는 내내 조마조마한 기분이 된다.

이 영화의 특별한 지점은 흑백갈등이라는 미국인들의 일상적 공포를 스릴러 속에 녹여냈다는 데 있다. 감독 조던 필레(38)는 인종차별을 꼬집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유명한 코미디언인데, 이번 영화에서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 크리스를 만난 백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였다네.” “난 타이거 우즈의 광팬이지.” 자신이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실은 어떤 관심도 의지도 없음을 보여주는 이런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동시에 가면 쓴 사람들의 광대극을 보는 듯 으스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장면마다 치밀하게 쓰인 음악이 몰입감을 높인다. 조금씩 고조되어 가던 공포는 마지막에 잔인한 폭력으로 폭발하는데, 앞 장면들에서 차곡차곡 쌓인 불안과 분노가 바탕이 돼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뜬금없이 느껴지진 않는다.

일부 팬들은 이 영화를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비교하며 즐기고 있다. 재능 있는 젊은 감독의 영화라는 점과 낯선 공간에 도착한 외지인에게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이라는 설정, 그리고 독특한 유머감각이나 종교적 함의 등이 두 영화의 공통점으로 꼽히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를 기록했다. 실제로 ‘겟 아웃’에는 논리적으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곳곳에 감춰져 있어, 관객들이 각자 찾아낸 ‘복선’을 온라인에서 공유하며 즐기는 모양새다.

파고들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만, 이런저런 함의를 무시해도 ‘겟 아웃’은 충분히 재밌는 영화다. 깜짝깜짝 놀라다가 피식 웃다가, 한순간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다가 제멋대로 뻗어가는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104분이라는 길지 않은 분량 덕에 “벌써?”하는 지점에서 늘어짐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의 공포 영화. 한 네티즌의 소감을 빌자면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게 가장 재밌는 영화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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