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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하는 여기자] ⑥발레 속 동성애코드

중앙일보

입력

발레하는 여기자 전수진

발레하는 여기자 전수진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매튜본의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을 맡은 호세 티라도의 모습. 왜 이 사진을 제일 먼저 보여드리는지는, 조금만 읽으시면 아실 수 있다.[2005.5.11 LG아트센터.최승식 기자]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매튜본의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을 맡은 호세 티라도의 모습. 왜 이 사진을 제일 먼저 보여드리는지는, 조금만 읽으시면 아실 수 있다.[2005.5.11 LG아트센터.최승식 기자]

지난 2015년 6월 18일. 흰색 원피스를 입은 일군의 여성들이 서울시청 앞에 섰다. 이들은 곧 차이콥스키의 유명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에 맞추어 발레 동작들을 선보였다. 당시 한창 논란이 됐던 퀴어(Queer)축제에 대해 반대하는 일종의 ‘춤사위’였다.

퀴어 축제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그들은 차이콥스키의 선율에 맞추어 춤을 선보였다. 해당 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0FqK6JD1KU

그런데 이분들이 한 가지 놓친 포인트가 있다. 차이콥스키가 누군가. 러시아의 대표적 동성애자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인사말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인사말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고전 발레는 차이콥스키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호두까기 인형’부터 ‘백조의 호수’는 물론 수많은 아름다운 발레 음악이 차이콥스키에 의해 탄생했다.

이 위대한 예술가에게 큰 고뇌를 준 것은 그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었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2009년 야심 차게 무대에 올렸던 작품 ‘차이콥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는 그런 고뇌를 파고든다. 이 작곡가의 음악은 왜 그리도 구슬픈가 의문을 품었던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세이프만의 솜씨가 빛나는 작품이다.

발레 ‘ 차이콥스키 ’는 창작의 고통과 동성애의 굴레 속에서 고뇌를 겪는 차이콥스키의 내면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사진은 말라코프가 독일 베를린 슈타츠 발레단에서 연기했을 때의 모습이다. [ 국립발레단 제공 ]

발레 ‘ 차이콥스키 ’는 창작의 고통과 동성애의 굴레 속에서 고뇌를 겪는 차이콥스키의 내면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사진은 말라코프가 독일 베를린 슈타츠 발레단에서 연기했을 때의 모습이다. [ 국립발레단 제공 ]

이 작품에서 차이콥스키를 가장 괴롭히는 건 창작의 고통이 아니다. 세간의 시선을 견디며 동성애에의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다. 이 작품은 1993년 당시 소비에트연방에서 첫 막을 올렸는데, 당시 첫 공연을 본 이들은 "위대한 작곡가의 명성에 먹칠하려 한다"며 비난 세례를 퍼부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2015년 서울에서와 달리, 지난 2008년 러시아에선 동성애 찬성 집회에 등장했다. 2008년 6월, 모스크바 당시 시장이 게이 퍼레이드를 금지한 데 대한 항의 집회가 벌어진 현장에서다. 수십명의 게이들이 모여 ”우리는 위대한 작곡가 차이콥스키에게 먼저 인사를 한 뒤 시위를 시작하겠다”고 한 뒤 집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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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2017년 5월26일 현재 한국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 24일, 군 내 동성애자 색출사건의 근거가 됐던 군형법 제92조 6항을 삭제하는 게 핵심인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92조 6항의 핵심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일부 종교단체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영국의 혁신적인 발레 예술가인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대표적이다. 1960년 런던에서 태어난 본은 22살까지 춤을 춰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발레를 접한 뒤 천재적 소질을 발휘해 만들어낸 ‘백조의 호수’엔 우선, 발레리나가 주인공이 아니다. 깃털 바지를 입은 위풍당당한, 그러나 고뇌에 찬 발레리노들이 무대를 꽉 채운다. 이 때문에 동성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댄스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안무가 매튜 본.  [사진제공=LG아트센터]

댄스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안무가 매튜 본. [사진제공=LG아트센터]

본의 ‘백조의 호수’ 속 주인공은 왕자다. 이 왕자는 유약하다. 어머니인 여왕에게도 인정을 못 받고, 신분이 다른 여자친구에게도 버림을 받는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살을 하려다 호숫가에서 남성적이고 강인한 일군의 백조들을 만나 삶에의 의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매튜 본은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왕자는 백조들에게도 완벽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의 죽음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댄스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안무가 매튜 본. '백조의 호수'.   [사진제공=LG아트센터]

댄스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안무가 매튜 본. '백조의 호수'. [사진제공=LG아트센터]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 위해 이번 ‘발레하는 여기자’ 칼럼을 쓴 것은 아니다. 동성애는 19세기 러시아 대륙에서 이미 천재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고뇌하게 만들었고, 그에 앞서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역사가 유구한 이슈다.

덮어놓고 반대하거나 무조건 찬성하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의 아름다운 강인함에 먼저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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