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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문재인 개혁: 성공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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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문재인 개혁의 초기 바람이 거세다. 대통령은 개혁의 선두 지휘자가 되어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 구체적 적폐들을 콕콕 짚어주고 있다. 이른바 ‘개혁의 조타수’ 역할로서 문재인은 지금 한국 사회 개혁의 일등항해사다.

일자리, 검찰·재벌 개혁이 #국가 명운 건 개혁의 요체 #한반도 평화 책무도 중요 #개혁은 법률·제도 통해야 #지속되는 성공 가능해져 #근본 개혁인 개헌을 기대

첫째, 익숙한 자기 및 자기 주변과의 결별이다. 큰 기대와 신뢰를 받는 점이다. 우선 측근과 실세들의 공성신퇴(功成身退)가 두드러진다.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오래 헌신한 사람들을 국정의 주요 자리에 대동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고위 인사들 역시 주요 직위 임명에서 제외했다(물론 그들도 역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나아가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재임 중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당선을 가장 기뻐할 친구에게, 또 그 친구의 비극이 자기 운명과 당선의 한 요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성적표를 들고 임기 후에 찾아오겠다는 가혹한 자기 각오를 드러낸 것이다. 개혁의 성공을 향한 결기가 무섭기까지 하다.

둘째, 개혁의 핵심 요체의 파악이다. 일자리 개혁과 재벌 개혁과 검찰 개혁은 국민생활·시장질서·국민경제·평등·인권·자유·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요체다. 대통령은 여기서부터 시작했고, 여기에 개혁적인 최고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국가 명운을 건 개혁을 촉구하고 기대하게 된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일자리는 개혁 성공의 알파요, 오메가다. 검찰 개혁은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좌우할 제일지표가 되었다.

재벌과 대기업들은 국내총생산(GDP)을 초과하는 자산 총액에도 불구하고 고용 비중은 너무도 작다. 그나마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재벌의 팽창과 일자리 감소의 비례적 병진, 즉 국민 경제 부활과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 재벌 개혁인 이유다. 특히 국가 경제와 가계·기업·정부소득의 비중, 그리고 기업 집중도와 공공지출·비정규직·실업·불평등·빈곤·남녀 임금격차를 비교하면 할수록 재벌 개혁 없는 국민 삶의 공공성과 형평성의 제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셋째, 외교가 내치이다. 광화문 항쟁을 잇는 문재인 개혁은 세계 연대와 평화를 위한 외교 개혁이자 국제 관계 개혁이어야 한다. 한국은 항상 외교와 안보와 평화가 곧 경제이고 일자리이고 복지다. 북핵 위기와 광화문 항쟁은 21세기 세계 최대의 핵전쟁 위협과 세계 최대의 평화시위가 공존하는 대드라마였다. 즉 시민적 공공성이 생산한 광화문 항쟁은 대결과 전쟁 방지,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외침이었다.

하여 광화문 항쟁은 국내 정부 교체를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공존과 협력, 대화와 평화의 가치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를 대표한 특사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으로 평화와 관여를, 국무장관은 체제 변동과 무력 수단 대신 신뢰와 대화를, 상원 군사위원장은 사드 비용의 미국 부담을 언명했다. 광화문 항쟁이 문재인 정부와 대미 특사를 거쳐 워싱턴을 변화시킨 놀라운 연쇄효과다.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항쟁이 확보해준 초기 역할 공간을 외교 능력으로 전환해 끝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절정의 기대와 인기를 누리던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임기 후반에 무능·무력·무실로 전락했던 전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실패는 제도의 한계를 넘어 추락하나, 개인의 성공은 법률과 제도를 넘기 어렵다. 법치의 본질 때문이다. 하여 개혁은 반드시 절차와 법률을 거치길 간언한다. 개별 사건과 사람의 사정 개혁은 착시효과로 인한 단기 지지는 크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특히 지금은 기득 세력의 도덕성과 국민 지지가 최하 수준이다. 보수 포용과 구조 개혁, 국가 통합과 개혁 지속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이 말의 숨은 뜻은 정녕 깊다. 개혁과 통합이 공존할 국가 대도약의 계기인 것이다.

성공한 개혁은 모두 법률과 제도를 통해서였고 또 법률과 제도의 개폐를 통해 완성되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지만 효과가 더욱 큰 까닭이다. 그 점에서 최고 규범 헌법을 개혁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크게 들린다. 거기까지 나아가는 근본 개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첫걸음부터 낮고 아픈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을 끌어안는 장면은 모두의 눈물을 자아내었다. 첫 대외 공개행사도 비정규직들과의 만남이었다. 국가 권력이 국민 누구의 어디를 향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들이었다.

광주에서 워싱턴까지, 비정규직에서 재벌까지 끌어안고 국가 개혁을 성공시켜야 하는 지난한 도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나라의 나라다움은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 즉 인간다움으로 연결돼야 한다. 나라다움과 인간다움을 함께 이루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