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식비도 월급서 … 특수활동비 대수술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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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줄여 일자리 예산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돈봉투 만찬 논란에 칼 들어 #청와대 올 경비 42%, 53억 절감키로 #문 대통령 “줄인 돈, 일자리 예산으로” #10년간 쓴 특수활동비 8조5631억 #청와대 “나눠먹기 관행 뿌리뽑겠다” #기밀 요하는 외교·안보 활동만 집행

청와대 예산집행을 맡고 있는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25일 브리핑에서 내년도 예산 중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올해보다 31%(50억원) 줄어든 111억원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비서실은 올해 5월 현재 (남아 있는)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126억원 중 42%인 53억원을 절감해 청년일자리 창출, 소외계층 지원예산으로 활용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올해 비서실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예산으로는 총 161억여원이 편성됐다. 현재 35억원을 집행했다고 한다. 이 중 73억원 정도만 집행하고 나머지 53억원은 다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수사기관의 정보 획득 및 사건 수사에 쓰이는 돈이다. 나머지 기관의 경우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영수증 없이도 사용할 수 있어 ‘눈먼 돈’ ‘쌈짓돈’이라고 불려왔다. 특정업무경비는 영수증을 제출하는 비공식 특수활동비다. 이 두 종류의 예산은 사실상 ‘품위유지비’나 마찬가지였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07 년부터 10년간 특수활동비 규모는 8조5631억원이다. 매년 8000억원 이상이 책정된 셈이다.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기관은 국가정보원이었다. 4조7642억원을 써 전체 특수활동비의 절반 이상을 사용했다. 국방부(1조6512억원), 경찰청(1조2551억원), 법무부(2662억원), 청와대(2514억원)가 뒤를 이었다.

청와대가 특수활동비 등을 줄인 만큼 곧 각 부처도 뒤따를 전망이다. 이 비서관은 “저희가 대표적으로 나눠먹기식, ‘깜깜이 예산’이라 지칭받는 특수활동비 부분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아껴 쓰도록 해서 솔선수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가 최근 검찰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 논란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돈봉투 만찬에서 오고간 격려금의 출처가 법무부와 검찰의 특수활동비였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최근 법무부의 돈봉투 만찬 사례와 같이 일부 고위 관료가 당초 특수활동비 취지와 다르게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국민의 세금인 특수활동비를 통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앞으로 기밀을 요하는 외교·안보 등 특정 활동 부분만 특수활동비 집행을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절감해 나눠먹기 식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통령 관저 운영비나 생활비도 특수활동비로 처리되는데 적어도 가족생활비는 대통령의 봉급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식대의 경우 손님 접대 등 공사가 정확히 구분이 안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 식대와 개·고양이 사료값 등 명확히 구분 가능한 것은 별도로 내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며 “그래도 주거비는 안 드니 감사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위문희·하남현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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