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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부럽지 않은 미식의 섬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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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해비치호텔 그랜드 볼룸.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화려한 갈라디너가 열렸다. ‘아시안 고메’를 주제로 한 이날 갈라디너는 일본에서 2015년 36세의 최연소로 미쉐린(미슐랭) 3스타를 받은 '코하쿠'의 고이즈미 고지 셰프를 비롯해 2013년 중식 셰프로는 가장 어린 나이인 38세에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아우 앨버트 홍콩 라이선F&B 총주방장, 서울 ‘두레유’의 유현수 오너셰프, ‘소나’ 성현아 오너셰프, 그리고 이 호텔 이재천 총주방장, 이렇게 다섯 명이 함께 준비했다. 제2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갈라디너는 1인당 25만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350석이 매진됐다.

25만원 갈라디너 350석 모두 매진 #고급스시집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다양 #고등어뱃살, 말고기육회 등 제주에만 있어

횟집 대신 고급 스시집

스시 전문점 '스시호시카이'의 임덕현 셰프가 스시를 만들고 있다. 활어횟집 일색이던 제주에 일본 정통 스시를 내세워 화제가 됐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스시 전문점 '스시호시카이'의 임덕현 셰프가 스시를 만들고 있다. 활어횟집 일색이던 제주에 일본 정통 스시를 내세워 화제가 됐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흥행 성공은 제주에선 접하기 어려운 초특급 이벤트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 저변이 그만큼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의 미식문화는 최근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갈치조림·돔베고기·고등어회·몸국 등 비슷비슷한 메뉴만 팔던 제주가 아니다. 최근 2~3년새 제주도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해 좀더 과감한 실험을 하는 고급 식당이 많이 등장했다. 2014년 횟집 일색이던 제주시 오라동에 '스시효' 출신 임덕현 셰프가 ‘스시호시카이’가 문을 연 것을 계기로 제주엔 수준 높은 스시집이 잇따라 들어섰다.

청담동 닮은 파인다이닝 

제주의 유일한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 제주산 식재료로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사진 해비치]

제주의 유일한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 제주산 식재료로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사진 해비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이보다 앞서 제주도에 자리잡았다. 2013년 제주시 한림읍에 문을 연 ‘모디카’가 대표적이다.

제주 한립읍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모디카'.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 출신의 이성우 오너셰프가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인다. [사진 모디카]

제주 한립읍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모디카'.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 출신의 이성우 오너셰프가 제주산 식재료로만든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인다.[사진 모디카]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를 졸업한 이성우 오너셰프가 문어·달치 등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 셰프는 “제주도에 2~3일만 머물러도 음식이 단조롭게 느껴지는데 괜찮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15년엔 해비치호텔에 제주도 내 첫 프렌치 파인다이닝인 '밀리우'가 문을 열었다. 해외 유학파인 윤화영·박무현·김영원 셰프가 차례대로 주방을 맡아 제주 식재료 꿩·토끼·한라봉 등을 이용한 프렌치 요리를 선보였다.
이들 레스토랑이 처음 오픈할 당시 "과연 손님이 있을까"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인기다. 스시호시카이는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통에 금~일요일은 식사 시간을 1·2부로 나눠 운영한다. 밀리우는 코스 가격이 8만9000원 부터지만 금~일요일엔 예약 없이는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박진선 셰프가 운영하는 디저트전문점 '더 심플'의 '녹차 밀푀유'.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을 위해 서울 '소나'의 성현아 셰프와 협업해 선보였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박진선 셰프가 운영하는 디저트전문점 '더 심플'의 '녹차 밀푀유'.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을 위해서울 '소나'의 성현아셰프와 협업해선보였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서울 청담동에서나 볼 법한 고급 디저트 가게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르코르동블루 출신의 박진선 셰프가 서귀포에 연 ‘더 심플’은 오후 3시 면 빵을 살 수 없을만큼 인기다.

'사람' 늘자 '맛' 좋아지다

'밀리우'의 제주산 고등어 요리. 제주바다와 일출을 표현했다. [사진 해비치]

'밀리우'의제주산 고등어 요리. 제주바다와 일출을 표현했다.[사진 해비치]

제주도가 향토 음식 일변도인 다른 숱한 지역들과 차별화할 수 있던 이유는 사람이다.
2006년 저가항공 취항으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더 늘었다. 2010년 이후엔 아예 제주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도 늘었다. 2009년 56만 명이던 제주 인구는 2010년 이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2016년 현재 66만 명을 넘어섰다. 제주를 찾는 외부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요리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일년에 두세 번은 제주를 찾는다는 직장인 김유연(39·고양시)씨는 “아무리 제주를 좋아해도 매번 똑같은 현지 음식만 먹기는 지루해서 가급적이면 새로 생기는 레스토랑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천 해비치 총주방장은 “타지에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은 물론 제주를 제 집 드나들듯이 자주 찾는 사람이 늘면서 향토 음식을 넘어선 새로운 음식을 원하는 욕구가 커졌다”며 “셰프들도 이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미식 수준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청정 식재료가 만든 미식천국   

제주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다. 스시호시카이 셰프가 제주산 참돔을 들고 있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제주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다. 스시호시카이 셰프가 제주산 참돔을 들고 있다.[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찾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 수준높은 미식세계를 만든 게 사실이지만 제주의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과 바다를 가진 환경 덕분에 제주엔 식재료가 넘쳐난다.
제주가 고향인 스시호시카이 임덕현 셰프는 “요리사는 남이 못쓰는 재료를 쓸 때 쾌감을 느낀다”며 “신선한 고등어뱃살이나 옥돔을 스시로 만들 수 있는 건 국내에선 제주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고급 스시집이 몰려있는 서울 도산공원·청담동 일대에서도 보기 힘든 스시를 이곳에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한 마리당 고작 2점밖에 나오지 않는 고등어뱃살은 초절임한 일반 고등어 스시와는 식감이나 맛이 전혀 다르다.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 건 물론이요 참치 뱃살 만큼 부드럽다.
모디카 이성우 셰프는 “몸통에 검정 동그란 무늬가 있는 달치는 제주에서 많이 나는 생선으로, 지중해에서 나는 잔도르와 거의 비슷해 이탈리아 요리에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해산물뿐 아니라 말·흑우·흑돼지 같은 육류도 풍부하다. 특히 뭍에선 접하기 힘든 제주 말고기는 지방이 거의 없는 살코기로 제주에선 육회나 초밥으로 즐겨먹는다.
따뜻한 기후 덕에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특히 메밀·고사리·표고버섯은 전국에서 제주산을 최고로 칠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김지순 제주향토요리명인은 "제주도에선 표고버섯을 초기라고 하는데 신선한 흙냄새가 나는 한라산 표고버섯은 고기와 같은 식감이 난다”고 설명했다.

해외셰프도 감탄 

제주 5일장을 찾은 폴란드 알렉산더 바론(오른쪽) 셰프 일행이 말린 생선을 보고 있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제주 5일장을 찾은 폴란드 알렉산더 바론(오른쪽) 셰프 일행이 말린 생선을 보고 있다. [사진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식재료 욕심 많은 건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제주를 찾는 외국 셰프들은 누구나 제주의 신선한 식재료에 감탄한다. 이번 페스티벌 참가차 한국을 찾은 셰프들도 5월 17일 제주 5일장을 돌아보며 모두들 제주산 식재료에 매료됐다. 폴란드 모던 퀴진의 대표주자인 '쏠레츠44'의 알렉산더 바론 셰프는 “제주도엔 흥미로운 식재료가 많다”며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신선한 해산물이 다양할 뿐더러 말린 생선 등 재료 다루는 방법도 인상적인데 모두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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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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