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한' 의심받는 일본 남성들, 목숨 위험해도 철로로 도망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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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는 치한으로 의심받는 남성이 위험한 경로로 도망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 NHK 보도화면 캡처]

[사진 NHK 보도화면 캡처]

NHK·후지TV 등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12일 게이힌 도호쿠선(京浜東北線) 도쿄 우에노역(上野駅)에서 30대 여성의 손을 잡았다고 의심받은 40대 남성이 도망쳐 인근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5일, 도큐덴엔토시선(田園都市線) 요코하마 아오바다이역(青葉台駅)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심을 받은 30대 남성이 역무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로에 뛰어들었고 들어오는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또 지난 18일에는 사이타마 현 카와구치시(埼玉県川口市) JR역에서 30대 남성이 여성과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던 중 자신이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오해한 남성이 선로로 뛰어들어 역 밖으로 도주하려다 철도법 위반으로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지난 3월 이후 치한이 선로 쪽으로 뛰어내려 달아나 전철이 멈춘 경우만 모두 7건으로 알려졌다.

치한으로 몰린 남성이 이렇듯 선로도 마다치 않은 채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가는 이유는 "치한으로 의심되면 일단 도망쳐라"라는 정보가 일본에 파다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한 치한 사건 재판에서 1심 유죄 판결이 선고된 적이 있다.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당시 일본 SNS상에서는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데도 유죄판결이 났다"며 "일단 치한으로 의심되면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하기 어렵다" "차라리 도망을 가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한다.

또 2015년 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변호사가 치한 사건과 관련해 "오해를 받은 사람이 현장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해 큰 파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른 일본인 변호사는 일본 방송 NHK와의 인터뷰에서 "선로에 뛰어내려 도망가는 행위는 최악"이라며 "위험할 뿐아니라 열차 운행을 방해한 형사상 책임을 추궁하거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안전 사고가 잇따르자 전문가들은 치한으로 의심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한편, 관련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희주 인턴기자 lee.hee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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