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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찬양’ 색깔론 벗고 바른 평가 기뻐”…대통령과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른 작곡가 김종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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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가슴이 벅차올라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5월 영령들이 지난 9년간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듯하네요."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1982년 4월 작곡 #"더 이상 문화·예술작품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선 안돼" #5·18기념식 대통령과 노래 제창 후 눈시울 붉혀 #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5·18민주묘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마친 김종률(59)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사무처장은 5·18광주 민주화운동 2년 뒤인 1982년 4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작곡자다.

그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지난 9년간의 마음고생을 달랬다. 보수성향의 정권과 보수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5·18의 상징곡을 기념식에서조차 마음껏 노래를 부르지 못해서다. 1997년부터 12년간 5·18기념식장에서 ‘제창’됐던 이 노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합창’으로 격하돼 논란을 빚어왔다.

김 사무처장은 “보수단체들이 5·18 희생자를 표현한 ‘님’을 놓고 북한의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며 “이제야 역사가 바른 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는 가사는 앞서 항쟁에 참여했던 분들의 희생과 5월 영령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굳건하게 살자는 의미였다"며 "이를 북한과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너무 현실에서 벗어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2일 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장에서 제창토록 지시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5·18을 위해 만든 노래가 오랜 색깔론에서 벗어나 올바른 평가를 받았다는 감격 때문이다.

김 처장은 “5·18을 상징하는 노래가 9년이나 억울한 평가를 받았다"며 ”더 이상 문화·예술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불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5·18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제창한 노래를 못 부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행위였다"며 "이제는 이 노래를 5·18 기념곡으로 지정해서 문화·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그는 이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라고 말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4월 당시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사용하려고 만든 테이프에 담긴 노래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따오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 사무처장이 곡을 붙여 탄생했다.

녹음 당시 신군부의 감시에 걸릴까봐 담요로 창을 가려 음악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하고 녹음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5·18기념재단은 최초로 녹음된 이 노래의 원곡을 디지털 음원으로 복원해 지난해 12월 27일 공개했다. 광주 지역 문인 10여 명이 작가 황석영(73)의 집에 모여 비밀리에 노래를 녹음한 지 34년 만에 음원이 디지털화된 것이다.

5·18 희생자들을 '님'으로 표현한 노래는 2000개의 카세트테이프에 복사된 뒤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원곡 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지만 맞춤법 표기법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됐다.

이후 이 노래는 5·18의 상징곡이 됐는데 보훈처가 2009년부터 '제창'이 아닌 합창단에 의한 '합창'으로 바꾸면서 지역 사회의 반발을 샀다. 5월 단체 등은 이에 항의해 국립 5·18민주묘지가 아닌 옛 묘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치르는 등 파행을 빚어왔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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