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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치즈 올라간 김치, 맛보실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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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정말 맛있어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시대 뒤떨어진 국뽕(국가와 필로폰의 합성어로 국가주의를 비꼬는 말) 질문 "두 유 노우 김치?"의 답변이 결코 아니다.
제 2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참여차 제주도를 찾은 폴란드 셰프 알렉산더 바론(Aleksander Baron·34)은 17일 제주 전복요리전문점 용담골에서 김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예의상 던진 말이 아니다. 아예 그릇째 들고 김치를 계속 먹었다. 심지어 “오늘 아침 묵고있는 호텔 뷔페 식당에서도 김치가 있길래 많이 먹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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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안주인이던 시절 김치 만드는 법까지 공개한 마당에 금발 백인이 김치 먹는 것 정도가 뭐 대수겠냐마는, 한국 사람 많은 미국도 아니고 한국이 처음이라는 폴란드 사람이 5년 전부터 김치를 직접 담궈 먹고 있다니, 이건 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방한한 폴란드 모던 퀴진 선두주자 바론 셰프 #"폴란드에선 '김치'가 곧 발효 채소 #반짝이는 제주 갈치, 너무 매력적"

전통 발효를 접목한 모던 폴란드 퀴진을 대표하는 알렉산더 바론 셰프. 제2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참가차 16일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사무국]

전통 발효를 접목한 모던 폴란드 퀴진을 대표하는 알렉산더 바론 셰프. 제2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참가차 16일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사무국]

발효 채소를 김치로 칭하다

폴란드 사람들은 2000여 년 전부터 60여 가지 채소를 발효시켜 먹었다. 채소가 나는 시기는 짧은데 추운 겨울을 나야 하니 미리 소금에 절여 저장했다 먹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췄고 양배추·무·오이 절임 정도만 남아 발효 음식의 맥을 겨우 이어왔다.
평소 발효 음식에 관심이 많던 바론은 5년 전 한식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폴란드에서 한식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김치에 관심을 갖는 걸 보고 폴란드 식재료에 김치 발효를 접목시켜 나만의 김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수십 종류 김치를 시도했다.
그 결과 지금 그의 레스토랑 '쏠레츠44(Solec44)'에서 파는 김치(메뉴에 음식 이름이 '김치'로 표기되어 있다)는 고춧가루 듬뿍 넣은 한국식 빨간 김치는 아니다. 대신 고추냉이나 겨자씨 등을 넣어 맵고 알싸한 맛을 낸다. 김치 재료엔 제한이 없다.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는 물부터 호밀을 발효시켜 만든 폴란드식 수프, 계피(시나몬), 넛맥(매콤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나는 향신료), 그물버섯, 꿀, 말린 청어, 생선알 등을 넣는다. 바론은 “재료와 소금의 종류, 물 등에 따라 발효의 결과가 다르다”며 “그만큼 만들 수 있는 김치의 수는 끝이 없다”고 밀했다.

양배추, 케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김치. 위에 염소치즈를 올렸다. [사진 알렉산더 바론]

양배추, 케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김치. 위에 염소치즈를 올렸다. [사진 알렉산더 바론]

모던 폴란드 퀴진의 대명사

바론은 바르샤바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술학교에서 조소를 공부한 미술학도였다. 여행중 요리가 가진 에너지의 매력에 빠져 우연히 진로를 바꿨다. 바론은 “요리사뿐 아니라 식재료를 재배한 사람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게 사명”이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식당에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한 그는 카리브해 연안 등에서 요리사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10년 귀국해 바르샤바에 쏠레츠44를 열었다. 이 레스토랑은 현대 폴란드 음식에 전통발효를 접목시켜 모던 폴란드 퀴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은 폴란드를 대표하는 셰프로 인정받는다. 덕분에 세계 각국 요리 축제에 많이 참가하는데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요리축전에도 나갔다. 또 2014년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 고에미요(Gault-Millau) 폴라드편에서 올해의 젊은 셰프로 선정됐다. 같은해 ‘슬로푸드 폴란드’에는 그의 레스토랑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주도 용담골에서 전복삼합을 먹고 있는 알렉산더 바론 셰프. 송정 기자

제주도 용담골에서 전복삼합을 먹고 있는알렉산더 바론 셰프. 송정 기자

4주마다 30가지 메뉴 바꿔

12년차 셰프인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식재료다. ‘좋은 식재료 없이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요리 철학이다. 닭요리를 할 때는 행복한 닭을 써야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재료가 나는 시기를 꼼꼼하게 따질 수밖에 없다. 4주 마다 30여 가지 메뉴를 모두 새롭게 구성한다. 매달 제철 식재료를 모두 적은 후 이들을 맛과 영양을 고려해 조합한다. 조리법은 단순하다. 되도록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식재료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첫 한국 방문에선 다양한 식재료를 볼 수 있었던 재래시장 투어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부터 말린 생선과 건어물 등 평소 접하지 못한 다양한 식재료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생선으론 갈치를 꼽았다. 바론은 “그렇게 반짝이는 생선을 본 적이 없다”며 “검은색 그릇에 빛나는 갈치를 요리해 올리면 얼마나 예쁘겠냐”며 미소지었다.
제주음식점에서 만난 바론은 인터뷰 내내 요리를 즐겼다. 깻잎에 전복과 돼지수육·버섯을 넣어 삼합으로 즐기고, 된장찌개·고등어구이에 우뭇가사리무침 같은 밑반찬까지 빠뜨리지 않고 전부 맛봤다. 전날엔 꿩·메밀요리전문점 ‘메밀꽃차롱’에 가 메밀전과 메밀국수를 먹었다고 한다. 그는 “제주의 식재료와 폴란드의 식재료엔 공통점이 많다”며 “제주에서 즐겨 먹는 메밀은 폴란드에서도 즐겨먹는 식재료”라고 소개했다. 오트밀처럼 먹기도 하고 한국의 순대와 같은 카샨카(kaszanka)에도 메밀을 넣는단다.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바론은 다양한 식재료와 친절한 사람들이 좋아 다시 제주도를 찾고 싶단다. 다만 그땐 더 오래 머물고 싶다고.

제주=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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