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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헬기조종사 1호 … 암수술 뒤 강제퇴역, 소송 끝 복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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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가보훈처장에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임명됐다. 역대 보훈처장 가운데 최초의 여성 수장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가보훈처장에는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임명됐다. 역대 보훈처장 가운데 최초의 여성 수장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17일 신임 국가보훈처장(차관급)에 피우진(61·여) 예비역 육군 중령을 임명했다. 국가보훈처장에 여성이 임명된 건 처음이다. 영관급 예비역 장교가 임명된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보훈처장에는 그간 예비역 장성이 임명되곤 했다. 이번 인사가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국가보훈처장 피우진 예비역 중령 #예비역 장성 자리에 영관급 파격 #“보훈은 안보의 과거이자 미래”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은 피 처장 인선 배경에 대해 “남성군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길에서 스스로 유리천장을 뚫고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온 분”이라고 소개했다.

청주대 체육학과를 나와 육군여군학교 장교코스를 밟은 그는 1979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특전사령부 중대장을 지냈고, 항공병과를 지원해 202 항공대대 헬기 조종사, 88사격단 여군 중대장, 1군사령부 여군대장 등을 거쳤다. 대한민국 1호 여군 헬기 조종사란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02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가슴 절제수술을 한 게 빌미가 되어 2006년 11월 강제로 퇴역해야 했다.

피 처장은 군 복무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2006년 국방부는 그에게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피 처장은 국방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2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승소해 2008년 복직했다.

군 관계자는 “피 처장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 군에서는 신체적으로 장애를 입었을 경우 무조건 전역을 해야 했다”며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군 인사법을 개정하는 데 피 처장의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현 중사 등이 치료가 끝난 후 본인 희망에 따라 군복무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것도 당시 피 처장 사건을 계기로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복직 전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그는 진보신당(현 정의당) 비례대표로 입후보했으나 금배지를 달진 못했다. 총선 낙선 후 복직했으나 2009년 계급정년으로 인해 중령으로 전역했다. 강제 전역 뒤인 2006년 그는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서전을 펴냈다. 저서에서 그는 대위 시절 여군 하사(부사)관을 4성 장군의 술자리에 보내지 않아 노여움을 사고 싸운 일, 2000년 사단장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 여군 장교를 돕기 위해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일화 등을 폭로했다.

상이군인인 피 처장은 본인이 보훈대상자(공상군경 3급)다. 피 처장은 임명 직후 “보훈은 안보의 과거이자 미래”라며 “제가 생각하는 보훈처는 보훈가족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보훈”이라고 말했다.

피 처장은 대선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여성 공직자와 장관을 30% 비율로 하겠다고 공약했고 군 출신이면서 보훈가족으로 상이군인이기 때문에 저를 발탁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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