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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탄핵 땐 바퀴벌레처럼 숨더니 … ” 친박 “낮술 드셨나” “자기 성찰 좀 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바퀴벌레”와 “낮술”.

자유한국당 당권 놓고 집안싸움 #정진석 “재건 걸림돌 제거해야” #친박은 ‘집단지도체제’로 살길 찾기

17일 오전 열린 자유한국당 중진연석회의에서 제1야당의 현실이 드러났다.

자성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나경원 의원은 “우리가 잘해서 24%(홍준표 후보 득표율)를 얻은 게 아니라 보수 표를 가져갈 쪽이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선거 기간 내내 샤이(shy·수줍어하는) 보수를 얘기했지만 보수가 샤이한 게 아니라 보수 지지층이 우리를 셰임(shame·수치심)한 것이다. 우리에겐 셰임 보수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홍준표

홍준표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는 최악의 보수 대참패”라며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을 35%로 보는데 거기서 11%가 빠진 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혁신적인 쇄신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한국당의 미래는 결국 ‘TK(대구·경북) 자민련’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존립에 도움 안 되는 사람은 육모 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 버려야 된다. 무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회의 뒤 기자들에게 “보수 재건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계파를 겨냥한 건 아니다”고 했지만 당 내부에선 “친박계 핵심 몇 사람을 겨냥한 듯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회의 초반의 자성 분위기 다음에 이어진 건 친박계의 반격이었다. 특히 홍준표 전 대선후보의 페이스북 글이 이들을 자극한 듯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홍 전 후보는 연석회의가 열리기 1시간 전쯤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 보려고 설치는 사람들이 가증스럽다”고 썼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먼저 발끈했다. 그는 “(홍 전 지사가) 낮술 드셨느냐”며 “그동안 선거하면서 목이 터져라 ‘우리(홍준표)가 살아야 당이 산다’고 했는데 바퀴벌레가 탄핵 때 어쩌고 제정신이냐”고 흥분했다.

역시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은 “정치 지도자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그에 맞는 행동도 해야 한다”며 “외국에 있으면서 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시라”고 주장했다.집안싸움은 이렇게 날로 거칠어지지만 차기 전당대회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다른 여야 정당들이 서둘러 대선 이후의 체제 재정비에 나선 것과는 대비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집안싸움은 이렇게 날로 거칠어지지만 차기 전당대회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다른 여야 정당들이 서둘러 대선 이후의 체제 재정비에 나선 것과는 대비된다.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총리 인준 등 급한 일을 처리한 이후에 전당대회 로드맵 얘기를 해볼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정우택 대행 자신이 원내대표를 계속할지 당 대표에 출마할지 결정이 안 됐기 때문”(한선교 의원)이란 비판이 나온다.

유기준 의원이 16일 라디오에 출연해 “당 대표에서 낙선한 사람이 최고의원을 맡을 수 있도록 집단지도체제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등 친박계들은 당내 세력 유지를 위한 살길 찾기에 나섰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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