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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낮술 먹었나"...한국당의 민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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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와 "낮술"

17일 오전 열린 자유한국당 중진연석회의에서 제1야당의 현실이 드러났다.

자성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나경원 의원은 “우리가 잘해서 24%(홍준표 후보 득표율)를 얻은 게 아니라 보수표를 가져갈 쪽이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선거 기간 내내 샤이(shy) 보수를 얘기했지만 보수가 샤이한 게 아니라 보수 지지층이 우리를 쉐임(shame·부끄러움)한 것이다. 우리에겐 쉐임 보수만 남았다”이라고 토로했다.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는 최악의 보수 대참패”라며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을 35%로 보는데 거기서 11%가 빠진 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혁신적인 쇄신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한국당의 미래는 결국 ‘TK(대구ㆍ경북) 자민련’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존립에 도움 안되는 사람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 버려야 된다. 무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회의 뒤 기자들에게 "보수 재건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계파를 겨냥한 건 아니다"라고 했지만 당내부에선 "친박계 핵심 몇 사람을 겨냥한 듯 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회의 초반의 자성 분위기 다음에 이어진 건 친박계의 반격이었다.

특히 홍준표 전 대선 후보의 페이스북 글이 이들을 자극한 듯 했다. 미국에 체류중인 홍 전 후보는 연석회의가 열리기 1시간 전쯤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는 사람들이 가증스럽다”고 썼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이 먼저 발끈했다. 그는 “(홍 전 지사가) 낮술드셨냐”며 “그동안 선거하면서 목이 터져라 ‘우리(홍준표)가 살아야 당이 산다’고 했는데 바퀴벌레가 탄핵때 어쩌고 제정신이냐”고 흥분했다.

역시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은 “정치 지도자는 품격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그에 맞는 행동도 해야 한다”며 “외국에 있으면서 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시라”고 주장했다.

집안싸움은 이렇게 날로 거칠어지지만 차기 전당대회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다른 여야 정당들이 서둘러 대선 이후의 체제 재정비에 나선 것과는 대비된다.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총리 인준 등 급한 일을 처리한 이후에 전당대회 로드맵 얘기를 해볼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자신이 원내대표를 계속할 지 당 대표에 출마할 지 결정이 안 됐기 때문"(한선교 의원)이란 비판이 나온다. 유기준 의원이 16일 라디오에 출연해 "당 대표에서 낙선한 사람이 최고의원을 맡을 수 있도록 집단지도체제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등 친박계들은 당내 세력 유지를 위한 살길 찾기에 나섰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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