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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에도 의연한 대인풍모 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9월 어느 날 이회장의 건강문제를 보살피기 위해 이태원자택을 방문할때 필자는 좀 긴장되어 있었다. 그동안 주위에서 들어온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로서의 처음 상면때 잔잔한 미소와 「지내보면 그렇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곧장 긴장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일주의·완벽주의로 일관해온 이회장의 다정다감을 느끼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일 상오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냉·온탕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규칙적인 골프로 체력관리를 하며 자신의 지병에 관하여 많은 책을 읽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분석·검토한 후 직접 결정을 내리는 엄격한 투병생활 중에서도 건강을 돌보는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를 남모르게 즐겼다. 남들에게 엄격한 이상으로 자신에게 엄격하여 긴 투병기간중 가족들에게까지도 결코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문병온 가족을 밝은 미소로 반기면서 두손을 꼭 잡는 자상함을 끝까지 지켰다.
삼성비서실에서 그사이 철해 놓은 자료에도 이런 점은 잘 나타나 있었다.
작년 5월 기침등 평소와는 다른 증상을 느껴 진단을 받는 과정도 철두철미 분석적이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단을 내리는 과정이나 치료선택의 과정이 밖에서 듣던 삼성의, 아니 이회장의 경영철학과 너무나 일치해 있었다. X선 촬영을 시발로 기관지 내시경 검사, 조직검사로 이어지고 외국에서의 진단방법, 폐암에 대한 최근 논문등이 정연하게 자료로 정리되어 있었다.
치료방법도 수술·화학요법·방사선 요법등의 3가지 방법이 수십명의 의료진에 의해 검토된 자료가 있으며, 방사선 치료로 결정이 난 후에도 가장 최신의 신뢰할 방사선 요법을 갖고 있는 나라, 또 암종별로는 어디가 가장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나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까지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 탐구자적인 자세가 나타나있었다.
이회장의 의료를 맡고난후에 병세가 점차 악화되어 10월17일 안국빌딩준공식 참석이 마지막 공식행사가 되었고, 10월20일 안양컨트리클럽에서 6홀을 돈것이 마지막 골프가 되었으며, 10월23일 한사코 부축을 거절, 걸어서 차를 타고 고려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온것이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
CT검사를 할 때 혈관을 찾지 못해 수십번 주사바늘을 찔렀어도 꼼짝않고 참았으나 며칠뒤 『검사과정이 정말 괴로왔다』고 실토하며 짓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심혈을 기울인 마지막 작품인 삼성종합기술원 개원식에 참석못한 것을 끝내 아쉬워하였고 기동이 불편하여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괴롭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박정로선생 (고려병원내과) 이 검사결과를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향으로 설명하였으나 주위사람들의 굳은 표정에서 결과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는 일체 검사결과에 관해 더 이상 묻는 등의 일이 없었다.
11월6일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후 서울대병원과 고려병원의 여러분 및 김재호선생 (미슬로언캐터링방사선료과) 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과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가면서 가족을 대할 때 눈시울이 붉어지며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때가 점점 많아져갔으나 자세를 흐트리지 않으려는 노력은 무의식 중에서도 계속 되었다.
11월19일 하오5시5분 긴 호흡곤란 끝에 「자신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자 노력했던 사나이」가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인 온가족의 슬픔을 뒤로하며 한국경제의 한세대에 굵은 선을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평안한 모습을 내실벽에 걸린 「공수래공수거」액자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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