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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 패스트볼 … 변화구 마구 던지는 투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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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 시즌 프로야구 KBO리그 투수들의 직구 비율은 47.1%(스탯티즈 기준)다. 공의 변화는 가장 적으면서도 가장 빠른 직구는 투수에게 기본적인 구종이다. 2014년 59.2%였던 직구 비율이 2015년 51%, 지난해에는 50.8%로 줄었다. 올해는 급기야 50% 아래까지 떨어졌다.

생존 위해 변화 선택한 마운드 #최근 몇년간 타고투저에 속구 줄여 #체인지업·커브 ‘떨어지는 공’ 늘려 #상하폭 커진 스트라이크존 활용 #헥터·피어밴드 등 작년보다 위력 #류제국은‘느린 직구’로 벌써 6승

똑바로 날아가는(실제 궤적은 완만한 곡선) 빠른 공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반대로 변화구의 주가는 높아지고 있다. 올 시즌 변화구 비율이 크게 늘었는데, 구종별로는 슬라이더가 21.2%, 커브가 9.2%, 체인지업이 8.4% 등이다. 특히 커브(지난해 대비 0.6%p 증가)와 체인지업(1.1%p 증가) 증가가 두드러진다.

흔히 말하는 직구는 포심패스트볼이다. 직구와 궤적이 비슷하지만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무브먼트(움직임)가 있는 컷패스트볼(커터), 투심패스트볼(싱커)은 변형 패스트볼이라고 한다. 포심 대신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투수도 증가세다. 지난해 4.4%였던 투심의 점유율은 올해 6%로 늘었다. 직구 계열인 스플리터(포크볼) 비율도 6.3%에서 7%로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KBO리그 정상급 투수들의 투구 패턴에서도 읽을 수 있다. KIA 에이스 헥터 노에시(30)는 올 시즌 8차례 선발등판해 6승무패, 평균자책점 2.18이다. 헥터는 지난해보다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고 있다(14.3%→21.5%). 시속 150㎞대 빠른 공으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든 뒤, 같은 투구 폼으로 던지는 느린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쓴다. 올 시즌 이런 볼 배합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게다가 커브와 커터, 슬라이더까지 섞어던지다보니 타자들은 헥터 공략에 애를 먹는다.

kt 외국인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32)는 너클볼로 반전에 성공했다. 피어밴드는 지난 시즌 도중 넥센에서 방출돼 kt로 팀을 옮겼다. 지난해 성적(7승13패, 평균자책점 4.45)이 평범해 kt와 재계약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런데 너클볼을 앞세워 올 시즌 5승3패, 평균자책점 1.42다. 세 손가락으로 튕기듯 밀어던지는 너클볼은 공의 회전이 없다. 심하게 흔들리며 날아오기 때문에 포수조차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다. 피어밴드는 전체 투구의 4분의1 정도를 시속 120㎞대 너클볼로 구사한다. 피어밴드는 다른 너클볼 투수들보다 빠르고 제구가 안정적이다. 고영표(kt), 임기영(KIA) 등 체인지업으로 무장한 사이드암 투수들도 선발투수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둘은 낙폭이 큰 체인지업을 던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심 대신 변형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는 투수도 늘었다. 개막 후 7연승을 기록한 NC 제프 맨쉽(32)은 타자 앞에서 가라앉는 투심패스트볼 비율이 46.7%다. 투심의 평균 구속이 시속 143.7㎞로, 포심(시속 143㎞)보다도 빠르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주로 불펜투수로 뛴 맨쉽은 미국에서 잘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까지 추가하는 등 놀라운 속도로 한국야구에 적응했다.

LG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오른손 투수 류제국(34)은 컷패스트볼이 주무기다. 올 시즌 6승2패, 평균자책점 3.33이다. 2000년대 초 마이너리그에서 뛸 당시 그는 최고 시속 98마일(158㎞)의 강속구를 던졌다. 지금은 느린볼 투수로 거듭났다. 그의 시속 130㎞ 중반대 커터는 오른손 타자 바깥쪽(왼손 타자 몸쪽)으로 휜다. 공이 꺾이는 타이밍이 좋아 ‘알고도 못치는 공’으로 불린다. 여기에 시속 100㎞대 느린 커브는 타자의 타이밍을 뺐는데 효과적이다.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다양한 변화구가 개발되면서 투수들 입장에선 던질 수 있는 공이 많아졌다. 또 변화구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타자들이 많기 때문에 투수들이 결정구로 변화구를 선택한다”고 분석했다.최근 몇 년간 이어진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이 투구 패턴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그간은 타자의 힘과 기술이 느는 속도를 투수들이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데 올 시즌 투수들이 반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땅볼 유도에 유리한 투심이나 체인지업의 비율이 높아진 게 이를 방증한다. 타자들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투수들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하나, 올 시즌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 것도 변화구 비율 증가를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시즌 개막 전 김풍기 심판위원장은 “스트라이크존이 비좁다는 의견을 수용해 규정대로 적용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스트라이크존의 상하폭이 넓어졌다. 덕분에 투수들이 체인지업·커브·스플리터 등 떨어지는 변화구를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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