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전문가 '6자회담' 릴레이 진단]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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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핵 문제 논의를 위한 6자회담 개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북한 등 관련 당사국들은 상대국의 수도를 분주하게 오가며 나름대로 의견 조율과 전략 점검에 한창이다. 남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 전문가들이 짚어본 ▶해당 국가의 전략 ▶회담에 대한 전망 등을 릴레이 기고 형식으로 연재한다.

러시아는 6자회담에 초대받은 데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 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외교부는 중국.미국.북한.남한.일본 등의 회담 참가국들과 사전 논의를 하는 등 적극 외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에 임하는 러시아의 입장은 지난 1월에 제안한 '일괄 타결안'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 및 경제 원조를 약속하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및 감시 체제로 복귀한다는 맞교환 방식이다.

러시아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그런 입장이 미국과의 관계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을 걱정한다.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도 계속 유지하려 애쓴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개발 포기와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분히 '과시적인' 대외적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북핵 위기 해결과정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외교적 '적극성'은 평양에 경제 지원을 하거나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지렛대가 없는 러시아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 외교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우선 러시아의 대기업들은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에 직접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특정한 방향의 정책을 펴도록 크렘린을 압박하고 있지 않다.

둘째, 한반도 핵 위기에 대한 책임이 평양과 워싱턴 양쪽 모두에 있다고 보는 러시아 외무부의 잘못된 가정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간주하고 정치적 타협을 통해 북한과 일정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실질적 방법은 엄격한 정치적 압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러시아는 현 한반도 위기의 근본원인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사실 한반도 위기는 '개혁과 개방'이 아닌 핵 위협을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북한 정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치적 협상을 통해 핵 위기를 넘긴다 해도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이 평양에 집단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같은 위기가 언제든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이번 6자회담에서 구체적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 회담의 의제와 방식에 대해 회담 참가국들 사이에 견해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핵 문제와 더불어 납치 문제를 거론하기를 원하고 있는 반면 다른 참가국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법적 효력이 있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북한은 외형상 6자회담의 틀내에서,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단독으로 핵 문제를 논의하기를 원하지만 미국은 어떻게든 이런 방식을 피하려 한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의 위협이 핵 개발이 아니라 북한 정치체제의 성격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포용정책의 틀 내에서 북한 체제를 평화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현 한반도 안전보장 체제의 정치.법률적 기초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이 같은 가정에 근거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의 두 단계를 상정해 볼 수 있다. 1단계로 6자회담의 틀내에서 미국.북한.중국의 3자협상을 통해 평양이 핵 개발을 포기한다는 확실한 계획을 제시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불가침 보장(경제적 원조는 제외)을 약속한다.

이에 근거해 워싱턴.평양.베이징(北京)은 1953년 체결한 정전협정을 북.미 국교수립 협정으로 발전시킨다. 동시에 남한도 북한과 국교(혹은 다른 형태의 공식 외교관계) 를 수립한다.

2단계로 일본이 협상을 통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물론 양국 외교관계 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납치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다. 이어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한 6자협상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문제를 논의한다. 대북 경제 지원은 평양이 경제 개혁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보여주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리=유철종 모스크바 특파원

<약 력>

러시아 외무부 1등 서기관 근무

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 부소장

같은 연구소 중국 및 동아시아 사회.경제 연구센터 소장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준회원

저서 '국제화와 지역주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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