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나날의 삶이 그대의 사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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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29면

지난 석가탄신일 작은 사찰을 찾아갔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사는 지역의 성직자들이 모여 종교 간의 평화를 기리는 모임을 하는데, 마침 석가탄신일이라 우리 회원인 스님이 계시는 사찰에서 모이기로 했던 것. 조촐한 석탄일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대화 모임을 가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어떤 사람이 수난절 퍼포먼스를 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어떤 신부님이 그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왜 예수처럼 살려고 하지는 않고, 예수처럼 죽는시늉이나 내죠?”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처럼 사는 것일까. 사도 바울로는 말한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일상의 삶-을 하느님께 헌물로 드리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신봉하는 신 앞에 헌금도 드리고 봉사도 하지만, 자기 일상의 삶 전체를 바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 소위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일에는 마음을 쓰지만, 나머지 엿새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마침 전어 철이라 후배와 함께 전어회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전어회를 몇 점 집어먹던 후배가 말했다. “싱싱하지 않네요. 죽은 전어를 섞은 것 같아요.” 나는 산골에서 자란 사람이라 잘 몰랐는데, 바닷가 출신인 후배는 회가 싱싱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이 횟집 주인은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기업에도 영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집에서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정성껏 조리를 한다. 하지만 장사하는 이들 중엔 이득을 얻기 위해 나쁜 재료를 사용한다든지, 재료를 적게 넣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몸을 만들지 않던가. 그날 횟집을 나오면서 보니 벽에는 어느 교회 이름이 박힌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이 횟집 주인은 주일성수를 하고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 헌금은 바칠지 몰라도, 자기의 일상을 하느님께 바치지 않음을 눈치 채고 매우 씁쓸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말했다.

“그대들의 나날의 삶이 그대들의 사원이며 그대들의 종교인 것을. 그대들이 사원에 들어갈 때마다 그대들의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가기를. 쟁기와 풀무와 나무망치와 류트, 필요해서 만든 것이나 즐기기 위해 만든 것 모두를 가지고 들어가라.”

그러니까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 대장장이가 낫이나 쟁기를 만드는 것, 주부들이 요리를 하는 것, 직장인이 돈을 버는 것 등 그 모든 행위가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이라는 자각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은 자기의 참주인으로부터 위탁 받은 것이라는 자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종교 간의 대화 모임이 끝난 뒤 스님의 농장을 둘러보았다. 고추밭과 표고버섯을 키우는 하우스, 그리고 암자 주변에 심어 놓은 아름다운 꽃들에서 스님의 부지런하고 여유로운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신도들이 많지 않아 농사를 지어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지만, 스님의 해낙낙한 미소에서 자족의 미덕을 느낄 수 있었다. 대웅전 앞에는 노란 골담초 꽃이 탐스러웠다. 골담초 꽃에 코를 대고 있었더니, 스님이 다가와 말했다.

“이 꽃이 맘에 드시나 봐요. 뿌리로 번식하는데 나중에 양생하면 나눠 드릴게요.”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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