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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말고 스텔라데이지호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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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은지내셔널부 기자

이은지내셔널부 기자

“두두두두.” 10일 오전 8시50분쯤 문재인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상공에 뜬 헬리콥터. 굉음 소리가 요란했다. 이 동네 주민 문승용(59)씨는 문득 상상에 빠졌다. “저 헬리콥터를 남대서양에 띄워주면 침몰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에 타고 있던 우리 아들 원준이(26)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버지 문씨는 자신의 멍든 가슴을 다시 한번 내리쳤다.

스텔라데이지호는 3월 31일 오후 1시25분(한국시간 31일 오후 11시25분) 침몰했다. 11일로 침몰 42일째다. 이 배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장과 선원 8명이 실종 상태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구명벌 4척 중 1척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선원들이 고도의 조난 훈련을 받고 의지도 강하기 때문에 구명벌에 생존해 있을 수 있다. 구명벌이라도 봐야겠다”고 주장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실종자 가족들을 더 서글프게 만든 것은 여론의 무관심이다. 공교롭게도 2014년 4월 침몰한 세월호가 약 3년 만에 진도 앞바다를 출발해 목포신항에 도착한 3월 31일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시점과 겹치면서 언론 보도는 세월호에 집중됐다.

국민 시선이 대선에 집중되자 선사는 구조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실종자 가족들에게 제공하던 숙박 지원을 끊었다. 우루과이 인근 해역에 급파한 수색 선박 2척을 철수하겠다고 외교부에 통보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사의 수색을 압박해 주길 바라며 정부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부의 싸늘한 문자 한 통에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는 문 대통령이 취임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9일 오전 가족 대표 한 명에게 ‘수색 임무 해제’ 취지의 카톡 문자를 날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전화 몇 통 하기도 귀찮은가. 국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은 매정한 일처리”라고 지적했다.

문승용씨는 “외교부가 대선 다음 날 출범한 새 정부에 부담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루 전날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서둘러 정리한 것 같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수색 종료가 아니라 수색 방식을 변경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가족들은 상처를 입은 뒤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연설에서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사고 대응을 제대로 못한 박근혜 정부보다 생명과 안전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수색 재개 등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1호 서한문에 새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이은지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