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박스권 뚫은 호황, 증권사들 왜 예측 못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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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조현숙경제부 기자

조현숙경제부 기자

11일 코스피는 2296.37을 찍었다. 1980년 1월 4일 종합주가지수란 이름으로 지수 100으로 출발한 지 37년 만에 처음 가본 고지다. 2011년 5월 2일 2228.96을 기록한 이후 6년째 이어졌던 박스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증권가 분위기는 환호보다 민망함 쪽이다. 예측하지 못한 호황이라서다.

지난해 11월 증권사는 일제히 ‘2017년 주식시장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대부분 올해 코스피가 1800대에서 2300대 사이를 오르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지다가 연말쯤 2200~2300선으로 올라서겠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이런 관측은 빗나갔다. 올해 들어 코스피는 거침없이 상승했고 6년을 이어왔던 박스피를 탈출했다. 코스피 최고 기록 경신과 함께 증권사들은 서둘러 코스피 예상 등락범위(밴드)를 2500대로 올려잡았지만 한참 뒤늦은 따라가기였다.

주가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54개 증권사(금융투자협회 회원사 기준) 가운데 어느 곳도 지금의 코스피 호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문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증권사 임직원 수는 3만5699명이다. 2012년 9월 4만3091명에서 7392명이 줄었다. 지난 5년간 지지부진한 코스피만큼이나 증권업계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인터넷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이 늘면서 수수료 인하 경쟁은 가열됐다. 수익성이 나빠진 증권사는 문을 닫아야 했고 인수·합병도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무차별 감원이 이어졌다.

증권가 내부에선 ‘양적 감소’보다 ‘질적 위축’을 더 큰 문제로 꼽는다. 거듭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과정에서 다른 업종으로의 인재 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들린다.

올해 코스피 호황에서 개인 투자자는 철저히 소외됐다.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동안에도 개인 투자자는 가진 주식을 내다 팔기만 했다. 그 물량은 고스란히 외국인 투자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의 주가 상승을 주도하는 세력도, 그 수익을 가져간 것도 외국인 투자자다. 이런 결과는 국내 증권사의 빗나간 예측, 떨어진 전망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국내 증권업계에 좋은 인재를 잡아두려는 노력, 전문 인력을 키우려는 투자 없이는 ‘외국인만의 잔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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