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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축구장 219개 면적 산림 잿더미…대충주의가 피해 키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방대원들이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 소방본부]

소방대원들이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 소방본부]

강원도 강릉과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피해 면적이 커지고 각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림 157㏊ 잿더미 주택 36채 불타고 이재민 69명 삶의 터전 잃어. #산림청 헬기 산불진화 중 비상 착륙 정비사 1명 병원 후송 후 숨져 #국민안전처 대규모 산불 발생지역 27억원 특별교부세 긴급 지원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당국이 진화가 완료됐다고 발표한 이후 곳곳에서 불이 재발화하면서 고질적인 ‘대충주의’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림 당국은 지난 7일 오후 6시 50㏊의 산림 피해가 발생한 강릉 산불이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후 8시30분쯤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박물관 인근에서 불씨가 되살아났다. 당국은 재발화 후 헬기 15대와 35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재발화한 산불로 7㏊의 산림이 추가로 사라졌다.

산림청 관계자가 7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아래 성산면 일대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산림청 관계자가 7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아래 성산면 일대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강릉시는 산불이 재발화하자 긴급재난문자 송출시스템을 통해 8일 오전 3시29분 ‘성산면 산불 재발화에 따라 보광리·관음리 주민은 안전한 마을회관으로 신속히 대피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고재인 관음2리 이장은 “완전 진화 발표에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재발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며 “주민 대부분이 불안해서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산면 주민 박모(60)씨는 “대충대충 진화해 불이 재발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척시 도계읍 점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도 100㏊에 달하는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현장엔 진화 헬기 38대와 5700여명의 진화인력이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였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지난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7140㎡) 219개 면적에 달하는 산림 157㏊가 잿더미로 변했다. 폐가 5채를 포함해 주택 36채가 불에 타 69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지난 6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집을 잃은 최종필(76)씨. 박진호 기자

지난 6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집을 잃은 최종필(76)씨. 박진호 기자

고기연 동부지방산림청장은 “땅속에 있던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고 있어 진화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산불 진화가 사흘째 이어지면 진화 헬기 정비사가 숨지는 등 안타까운 사고도 이어졌다.

8일 오전 11시46분쯤 강원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도계농공단지 인근 하천 변에 산불진화 중이던 산림청 소속 진화 헬기 1대가 비상 착륙했다. 이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정비사 조병준(47)씨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숨졌다.

산림청 소속 헬기가 7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아래 성산면 일대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김현동 기자

산림청 소속 헬기가 7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아래 성산면 일대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김현동 기자

당시 사고 헬기에는 조씨 등 3명이 타고 있었다. 조종사 문모(50)씨와 박모(48씨)등 2명은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헬기는 산불진화 중 고압선에 걸려 비상 착륙했다. 이 과정에서 기체 일부가 파손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연기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헬기가 고압선에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조씨가 사고 당시 튕겨 나간 것인지 뛰어내린 것인지를 확인하는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산불과 맞선 진화대원들의 부상도 이어졌다.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7일 오후 11시25분쯤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산7번지에서 영월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진화대원 엄모(53)씨가 진화작업 중 고사목에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다행히 헬멧 등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 현재 엄씨는 삼척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7일 오후에서도 대구소방본부 소속 대원이 진화작업 중 나무에 부딪혀 눈을 다쳤다. 다행히 이 대원 역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진화작업에 다시 투입됐다.

국민안전처는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강릉·삼척시와 경북 상주시에 27억원의 특별교부세를 긴급 지원키로 했다. 지역별로는 강릉과 삼척에 각각 10억원, 상주에는 7억원을 지원한다. 특별교부세는 산불 진화에 동원된 인력·장비 비용과 응급 복구·이재민 구호 등에 사용된다.

이재민에게는 생계비, 주거비, 구호비 등이 지원된다. 생계비는 1인 가구 기준 1회 41만8400원, 주택피해는 전소 시 900만원, 구호비는 1인 기준 1일 8000원 등이다.

7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일대의 가옥이 산불에 타 무너졌다. 군인들이 잔불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7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일대의 가옥이 산불에 타 무너졌다. 군인들이 잔불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또 주택 피해자가 신청하면 전국재해구호협회 지원으로 임시사용 컨테이너를 1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강릉영동대학은 산불이 재발했지만 기숙사를 정상 운영해 논란이 됐다. 8일 강릉영동대 학생들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강릉영동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간밤 기숙사에서 정상 생활을 해야 했던 학생들이 불안감을 토로하는 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한 학생은 8일 0시쯤 “주변 주민들은 다 대피했다는데 인원이 이렇게 많은 기숙사에서 점호고 뭐고 언제라도 집 갈 수 있게 문 열어두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기숙사 문이 잠겨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강릉영동대 관계자는 “재발화로 산불이 발생함과 동시에 즉시 관계기관에 대피여부를 문의했더니 대학 뒷산은 확실히 안전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면서 “각 기숙사 별로 이같은 내용을 방송을 통해 안내했고 직원들이 비상대기를 하며 산불 상황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으로 잠기는 문에 대해서도 “기숙사 출입문은 모두 자동문 시스템으로서 밤 11시30분에 자동으로 잠기며, 비상시에 즉시 개방되는 시스템” 이라고 설명했다.

강릉·삼척=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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