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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아디다스 발길에 쏠린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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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해 가동되는 독일 스마트공장 놓고 엇갈린 해석

아디다스 독일 스피드팩토리에서 시범 생산한 운동화. [사진 아디다스]

아디다스 독일 스피드팩토리에서 시범 생산한 운동화. [사진 아디다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2015년 말 독일 안스바흐에 스마트 공장을 설립했다. ‘스피드팩토리’다. 사람 손 대신 로봇이 운동화를 만든다. 올해 하반기 정식 가동한다.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가 생산될 예정이다.

운동화 90% 이상 아시아서 생산 #독일에 로봇 자동화 공장 들어서 #‘제조업 리쇼어링’ 미국·유럽선 기대 #정작 롤스테드 CEO는 “유턴은 환상” #“신발끈 매는 기술은 사람이 낫다” #자동화보다 생산속도 혁신에

이 공장은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예전 1~3차 산업혁명은 기술발전과 함께 성장을 주도해 일자리도 늘려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전혀 다르다. 로봇을 통해 적은 인력으로 보다 많은 생산을 해낸다. 싼 임금을 이유로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과 같은 국가에 공장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기업은 공장을 자국으로 유턴시키게 된다. 리쇼어링이다. 독일언론이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를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사례로 꼽는 이유다.

그런데 전임 최고경영자(CEO)와 현 최고경영자가 4차 산업혁명을 경영에 접목하는 문제를 두고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임 CEO는 노동집약산업인 신발에도 수공업의 색깔을 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스피드 팩토리’를 만들었다. 반면 현 CEO는 회의적이다. 따라서 제조업이 유럽으로 회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롤스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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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취임한 캐스퍼 롤스테드 아디다스 CEO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운동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로봇이 만드는 완전 자동화가 5~10년 안에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 120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운동화 제조 작업 중에서 섬세한 작업은 아직까지 로봇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운동화 업계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제는 운동화 끈을 끼우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현재는 이 작업을 완전히 손으로 해야 하며, 이걸 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의 반자동 생산시설이 완전 자동화된 로봇 기반의 생산 시설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롤스테드는 “제조업이 유럽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게 믿는 것은 완전한 환상(illusion)”이라고 말했다. 아디다스의 생산 시설 중 90% 이상이 아시아에 있다.

그는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길 것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옮기는 것은 경쟁력이 전혀 없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정치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관점에서도 매우 비논리적이며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영방침은 전임 CEO인 허버트 하이너의 주장과 차이를 보인다. 하이너는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내가 아디다스에 입사한 1987년은 독일 공장의 문을 닫고 중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막 시작할 때였다”며 “이제 (제조 공장이) 돌아오고 있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다는 게 참 묘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취임해 지난해 물러날 때까지 15년간 아디다스를 이끌었다. 하이너는 아디다스 제조 혁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일과 미국에 각각 스피드 팩토리를 여는 구상을 세웠다.

아디다스 운동화는 중국·베트남 같은 곳에서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다. 이들 나라에서도 인건비가 오르고, 힘든 일을 기피하면서 기술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시아 의존도를 점차 줄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제조 혁신 차원에서 스마트 공장 건설투자를 결정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견해가 완전히 갈리는 것도 아니다. 롤스테드 CEO의 발언은 공장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대거 선진국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과 미국의 스피드팩토리는 연간 각각 50만 켤레를 생산할 뿐이다. 지난해 아디다스가 생산한 3억6000만 켤레의 0.3%에 불과하다. 스피드팩토리만으로는 당장 아시아 공장이 생산하는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이너 전 CEO도 “당장 스피트팩토리가 아시아 공장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아의 생산 물량을 보완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고 스마트 공장의 의미까지 퇴색하진 않는다. 롤스테드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생산 속도 혁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운동화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한 뒤 완제품으로 나오기까지 약 18개월이 소요된다. 원·부자재를 조달하고, 이를 부속품으로 만든 뒤 다시 손으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단계마다 공급망 관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낡은 제조 방식으로는 트렌디한 디자인을 빨리 소비하고 싶어하는 고객 요구를 따라갈 수 없다.

스피드팩토리는 이 과정을 몇 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지난해 시험 가동하는 공장을 방문한 FT·이코노미스트 등 유럽 언론이 이를 확인했다. 생산라인 한 곳에서 밑창을, 다른 라인에서 신발 윗부분을 만든 뒤 결합해 운동화 한켤레를 완성하는 데 약 5시간이 걸렸다. 제임스 칸즈 아디다스 전략담당 부사장은 “스피드팩토리는 기존의 제품 생산 장소, 제조 방법, 시간 등 모든 경계를 허물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디다스는 지난달 3D 프린터를 이용해 운동화를 만드는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스마트 제조는 대량 생산보다는 소수를 위한 맞춤형 고급 제품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이 때문에 스피드팩토리는 대량 생산 공장의 리쇼어링보다는 고급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 공급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중국에도 스마트 공장이 세워질 수 있다. 롤스테드 CEO는 “스피드팩토리는 틈새 시장 수요를 위한 섬세한 신발 제조 기술을 구현한다. 결국 중국에도 스피드팩토리가 들어설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이키와 언더아머 등도 스마트 공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 곳은 없다. 미국의류신발협회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서 판매된 신발의 98.4%가 해외에서 제조됐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에 수입되는 신발의 평균 관세는 10.8%, 운동화는 대략 20%쯤이다. 일반 산업 제품 평균인 1.5%보다 훨씬 높다.

전문가들은 신발 제조업이 미국으로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조사업체 NPD그룹의 매트 파웰 스포츠산업 애널리스트는 “미국에서 신발이 대량 생산되더라도 이는 다수의 로봇과 소수의 사람이 만드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아디다스 스피드팩토리에는 160명이 근무할 예정이다. 리쇼어링이 일어난다고 해도 회귀하는 일자리 수는 많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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