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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비용 내라·FTA 종료도 거론 … 트럼프 발언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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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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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의 ‘폭탄 발언’이 엄청난 파장과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부담” 약정서 있는데 #"사드 시스템은 10억 달러 #한국이 내는 게 적절” 주장 #대선 코앞서 정치 파장 클듯

트럼프는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관련해 두 가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우선 사드에 대해서다. “나는 한국 정부에 사드 배치 비용을 지불하는 게 적절하다고 통보(inform)했다. 우리가 (한국을) 지키는데 왜 비용을 내나. 한국이 내야 한다”며 “사드 시스템은 10억 달러(약 1조1300억원)”라고 했다. 또 FTA에 대해 “힐러리가 만든, 받아들일 수 없고 끔찍한 협정으로,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하고 싶다”고 했다. 재협상 의사를 언제 밝힐 것이냐는 질문엔 “아주 곧. 지금 발표하는 것(Very soon. I’m announcing it now)”이라고 답했다.

북한 핵 문제에 올인하는 듯하다가 느닷없이 한국의 뒤통수를 친 꼴이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렸다. 동맹국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국 이익만 생각하는 ‘미국 우선주의’만 보인다. 사드 장비 등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원칙은 한·미 간 합의사항이다. 지난해 7월 한·미 공동실무단이 체결하고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정식 서명한 약정서에 담겼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관련 규정에 따라 한국 정부는 부지와 시설을 제공하고, 사드 전개 및 운영 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주고 싶어도 규정상 줄 수 없게 돼 있다. 정부는 약정서 내용부터 공개해 불필요한 논란 확산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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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트럼프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약정서 내용을 잘 몰라서일 수 있지만 부지불식 간에 자신의 인식을 드러낸 걸로 봐야 한다. 동맹국 간에도 공짜 점심은 없으며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게 사업가 출신인 그의 원칙이다. 그는 지난해 선거 기간 중 한국과 일본,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입버릇처럼 강조했었다.

미국이 북핵·미사일 도발 억지를 위해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이동시키고, 중국 설득을 위해 통상이익까지 양보하는 마당에 한국도 뭔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일 수 있다. 올 연말 시작되는 차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 터무니없는 액수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게 그의 협상 스타일이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체결된 한·미 FTA로 미국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일방적 주장을 펼치며 자신이 당선되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얼마 전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한·미 FTA ‘개선(reform)’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종료’ 언급은 처음이다.

FTA 재협상은 양국 합의로 가능하다. 종료는 다르다. 일방의 통보 이후 180일이 지나면 효력이 정지된다. 미국이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익을 나누고자 맺은 동맹국 간 협정이 일방의 파기로 없던 일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진의를 파악해 서로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으는 게 과제다.

문제는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이다. 당장 반미 감정 고조가 우려된다. 가뜩이나 북핵 문제에서 한국을 무시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는 터다.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 설정이 차기 정부의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배명복 기자(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