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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불이익 본 제보자에게 직접 범인 잡으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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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현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현진사회1부 기자

정현진사회1부 기자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치죠. 그런데 경찰이 나보고 집 구조를 잘 알 테니 그 도둑을 직접 잡으라고 한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럴 거면 경찰이 왜 필요해요?”

한 사립학교 관계자는 서울교육청이 24일 공익 제보자를 사학비리 감사에 참여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이날 서울교육청은 사학비리를 고발한 뒤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이나 해임 등 신분상 불이익을 겪는 교원이 발생하면 이들을 사학비리 관련 외부 전문가로 위촉해 감사에 직접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공익 제보자를 사학비리 감사에 참여시키는 건 전국에서 서울교육청이 처음이다. 이민종 서울교육청 감사관은 “사학비리 고발자는 사립학교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라며 “이들을 감사에 참여시켜 사학비리 감사의 질을 높이고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감사관은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학교의 감사 활동에만 참여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서울교육청 얘기대로 공익 제보자가 사립학교 내부 사정, 특히 비리가 발생하는 구조에 밝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학비리 감사에서 이들이 제공해 준 각종 정보가 큰 도움이 되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사는 무엇보다 객관성과 신뢰가 생명이다. 공익 제보 이후 파면이나 해임을 당한 교원이라면, 설령 본인은 부인하더라도 “사립학교에 악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의 눈길을 피하긴 어렵다. 자칫 감사의 신뢰와 객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 소재의 한 사립학교 교장은 “학교와 갈등을 빚고 감정이 쌓일 때로 쌓여 사립학교 법인을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 텐데, (공익 제보자가)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 같은 목소리는 교육청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교육청 공무원은 “학교 측이 ‘사립학교에 대해 악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 감사를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공정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공익 제보자들은 비리 제보와 이후 과정에서 간혹 상상을 초월하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섰지만 돌아오는 건 파면·해임이라는 중징계와 함께 복직을 위한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을 논란 속에 감사 현장에 직접 투입한다면 자칫 또 다른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병은 발병했을 때 수술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 진정 사학비리를 근절하고 싶다면 공익 제보자들에 대한 보호를 보다 철저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이런 식의 활용 방안은 또 다른 다툼만 야기할 뿐이다.

정현진 사회 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