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누가 챙겨야 하나. 바삐 살다보니 생일이든 기념일이든 챙기기 어려운 게 요즘 세상이지만 그래도 안 챙기면 섭섭하기 마련이다.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도, 그 생일을 만들어준 부모에게도. 그래서 남이 못 챙기면 나라도 챙겨 먹어야 한다. 케이크를 자르고 촛불 끄는 걸 하지 못해 섭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그날이라면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총리와 장관 등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유공자 훈·포장과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시상이 진행됐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인이 모여 상을 나누고 서로 격려했으니 기분 좋은 잔칫날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날은 과학의 날 반세기,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천명(知天命)의 생일날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성장이 멈춰버린 대한민국 국가 연구개발 혁신체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비전을 세우고 공유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의 어느 구석에서도 ‘과학의 날 50주년’이란 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과학 원로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도 관심이 없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초청은 했지만 응한 후보들이 없었다.
과학의 날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졌다.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 발족일을 기념해 이듬해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정했다. 이후 과학은 한국의 성장엔진이 돼 이 땅의 근대화·산업화를 앞장서 이끌어 왔다. 그런 과학의 날이 왜 50주년을 맞아 실종됐을까. 4월 21일이 과학의 날이 아니라 과학·정보통신의 날이 된 때문이다. 2013년 과학과 정보통신이 만난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어지면서 한 부처에서 과학의 날(4월 21일)과 정보통신의 날(4월 22일) 행사를 하루 걸러 하기가 부담스러워졌다. 대통령이 한 부처 행사에 연이틀 가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러다 보니 올해 50주년 생일이 묻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나이 쉰이 되도록 생일상을 받기만 해 온 철없는 ‘과학’에 있는 것 같다. 그 나이 되도록 미역국을 입에 떠 넣어준 부모(국가) 탓도 크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박사 위에 주사(6급 공무원)’란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관치(官治) 과학계의 현실이 낳은 폐해다. 반세기 전 과학의 날을 제정하고 대덕연구단지를 만든 대통령 딸은 지금 ‘감옥’에 있다. 과학계는 이제 부모가 챙겨주지 못하면 생일 자축도 못하는 애어른이 돼버렸다. 이래저래 우울하고 쓸쓸한 과학의 날 50주년이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