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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정수]

"오 코디, 오늘 수술 취소한 34세 여자환자 어떻게 된거야? 왜 갑자기 수술 안받겠다고 하노?"

"갑자기가 아니고 자기는 반절제가 안되면 수술 안받겠다고 어제 오후에 연락 왔어요"

"뭐라고? 세상에~~, 이 환자는 반절제냐 전절제냐를 선택하는게 아니고 반드시 전절제하고 수술 후 보조치료도 빡세게 해야 되는 환잔데? 그렇게 한가한 상태가 아닌데...그냥 유두암이 아니고 저분화 갑상선암이라고.

저분화암은 미분화암 전단계암이란 말이야...... 환자에게 그렇게 설명했는데.....뭔가 잘 못 알아 들은게 틀림없어.

저분화나 미분화암은 생명을 보장 못한단 말이야, 이런 사정을 알고 반절제를 고집한 것은 아니겠지.  환자한테 연락해 봐요, 우리병원에서 수술을 안받아도 좋으니까 너무 늦지 않게 딴 병원에서라도 수술 받으라고 말이야"

"오늘 말고 며칠 있다가 할래요"
"왜 ?"

"지금은 환자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니까 좀 생각할 시간을 주고 통화하는게 좋겠어요, 지금 하면 거부반응이 많아요"

환자들 중에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아니 엉뚱한 신념을 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길로 가면 분명 망할 것이 뻔한데 그길로 가는 것을 보면 기가 찬다. 아니 불쌍하다.


하긴  나쁜 정보이든 좋은 정보이든 넘쳐나는 정보에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병에 대한 의료정보에 이르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이 의사 말 다르고 저 의사 말 다르고.....어느 의사 말 따라야 해?

갑상선암에 대한 정보는 더욱 환자를 헷갈리게 한단 말이지.

2015년 미국 갑상선학회의 진료가이드라인이 바뀌기 전에는 1cm 이상 유두암은 전절제를 해야된다고 하했만 지금은 1cm이상이라도 반절제가 허용되는 경우가 많아져 전절제보다 반절제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다.

이는 반절제가 전절제보다 재발율이 약간 높기는 하지만 사망율에는 차이가 없고 삶의 질면에서 볼 때 반절제가 더 유리하다고 해석되어 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전부터 전절제를 할 때는 전절제가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절제 대상 환자를 환자가 원한다고  반절제를 해서 나중에 악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의료과오(malpractice)가 되는 것이다.

전절제를 반드시 해야할 여러상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첫 수술을 적극적으로 하고 수술 후 보조치료도 빡세게 해야 되는 암이 바로 저분화 갑상선암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반절제가 아니면 수술을 안받겠다고 펑크낸  환자가 바로 세침검사로

저분화 갑상선암(poorly differentiated thyroid carcinoma)으로 진단된 환자인 것이다.

저분화암은 분화가 가장 안된 미분화암(인체의 암중 가장 치사율이 높다)의 전 단계인데 어찌 한가하게 반절제 타령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문헌(Thyroid 2016;26(9):1259~1268)에는 적극적인 치료후 5년 사망율이 20%로

전통 유두암 5년 생존율 100%에 비하여 생존율이 말도 아니게 낮은 것으로 보고되지 않았던가.


같은 갑상선암이라 해도 이렇게 다른 경과를 밟는데 말이지....

환자들 중에는 "반절제를 하면 수술후에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전절제를 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완전 틀린 정보인 것이다.

미국 통계로는 반절제 환자중  80%는 약이 필요 없더라고 되어 있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50% 이상이 신지로이드라는 약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환자들은 남겨둔 갑상선조직의 기능이 정상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만성 갑상선염이 많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수술을 거절한 환자분은 저분화암으로 확진된 3.3cm 암덩어리가 왼쪽 갑상선 날개를 완전 점령하고 있었고 일부는 피막을 뚫고 나오고 있었으며, 반대편 날개에 있는 사이즈는 작지만 넓이보다 키가 큰 저에코 결절(hypoechoic taller than wide)도

암을 강력히 시사 하고 있어 절대적으로 전절제를 받아야 될 상황이었는데 그만 반절제의 미련 때문에 수술을 거절하게 된 것이다.

반대편 날개에 암이 없더라도 절대적으로 전절제를 받아야 되었는데 무슨 놈의 악귀가 이 젊은 여자사람을 엉뚱한 곳으로 유혹을  했는지 원.......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말한 개그맨 이경규의 명언이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에휴~~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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