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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 ⑭ 아는 사람만 아는 별미, 기장 멸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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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고 찌개 끓여 먹는 기장 멸치.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고 찌개 끓여 먹는 기장 멸치.

아주 어릴 적 기장이 어디 붙은 고장인지는 몰라도 ‘기장 멸치’는 알았다. 살림꾼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지역 별미는 전부 맛보고 자란 덕분이다.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선 멸치를 회로 먹고 구워 먹고 찌개 끓여 먹는다고 했다. 멸치를 회로 먹는다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뭍사람에게 멸치는 항상 말린 것이거나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젓갈이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는, 그 기막힌 맛

그렇게 호기심 가득 품고 출장을 떠났다. 울산과 경계를 하는 부산 기장에서도 ‘대변항’이 멸치 집산지다. 소담한 포구 대변항은 매년 이맘때면 한바탕 소동이 인다. 새콤달콤한 멸치회와 고소한 멸치구이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 계절 기장에선 입만큼 눈도 즐겁다.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봄맞이 풍경이 대변항 포구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멸치 터는 선원들.

멸치 터는 선원들.

오후 2~3시 대변항 부산 동부수협 앞 부두에 고깃배가 들어선다. 선원들은 고기를 나르는 대신 그물을 펼친다. 초록색 그물에 어른 검지손가락만 한 은빛 멸치들이 다닥다닥하다. “어야디야 어야디야.” 장정 예닐곱이 노동요를 부르며 그물을 털기 시작한다. 그물에 걸린 멸치는 요동을 참지 못해 제 몸을 분리한다. 대가리는 그물에 그대로 걸려 있고 살찐 몸통만 하늘로 튀어 오른다. 그렇게 30~40분 작업을 하고 나면 선원들 얼굴엔 온통 은빛 비늘 범벅이다. 노동요를 부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군무 같기도 하고, 주술의식 같기도 하다.

숨이 막 끊어진 멸치를 집어 들었다. 어른 검지만 한 크기로 살이 퉁퉁하게 오른 멸치는 등 쪽이 푸른색을 띠었다. 멸치도 어엿한 등 푸른 생선이었다. 갓 잡은 멸치들은 경매를 통해 식당으로 팔려간다. 대변항 주변은 횟집은 대부분 멸치요리를 낸다. 거북이횟집(051-721-3340)은 강숙자(73) 사장이 운영하는 멸치회 맛집이다. 2017년 올해로 23년 됐다. 강숙자 사장은 멸치축제 때 열리는 요리 대회에서 멸치찌개로 세 번이나 상을 받았다.

기장 멸치축제에선 다양한 멸치 요리를 시식할 수 있다.

기장 멸치축제에선 다양한 멸치 요리를 시식할 수 있다.

강 사장에 따르면 기장 사람들은 예부터 집집마다 멸치를 많이 먹었다. 가장 구하기 쉬운 생선이어서다. 구이‧찌개‧조림은 기본이고 동그랑땡‧회 등 다양하게 요리했다. 그렇게 가정집에서 먹던 멸치 요리가 상품화된 것은 90년대 초. 기장 멸치를 알리기 위해 매년 4월 멸치축제를 열면서 자연스레 요리도 대중화했다. 올해 기장 멸치축제는 4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멸치회무침.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멸치회무침.

고소한 멸치구이.

고소한 멸치구이.

강 사장은 가게 밖에 석쇠를 놓고 멸치를 굽는데, 이 냄새가 아주 기가 막히다. 말 그대로 발길을 붙잡는다. 뼈째 씹어 먹는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비리지 않고 담백하다. 멸치구이(2~3인) 2만원. 다음으로 맛본 음식은 멸치회무침(2~3인, 2만원). “동생한테도 안 알려줘. 이거 양념 어떻게 만드는지.” 강사장은 “레몬즙을 넣어 만든 특재 초장”이라고만 설명했다.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발라낸 멸치와 잘게 썬 사과‧미나리‧당근‧양배추 등을 넣고 초장을 뿌린 다음 골고루 비벼낸다. 양념에 버무려진 멸치회는 전혀 비리지 않다.

구수한 맛이 일품인 멸치찌개.

구수한 맛이 일품인 멸치찌개.

새콤달콤매콤한 멸치회로 식욕을 끌어 올린 다음엔 멸치찌개를 먹을 차례다. 강숙자 사장의 주특기 멸치찌개엔 뼈를 제거한 통멸치와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다. 된장으로 간을 하고 들깨가루와 국산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얼큰하면서 시원한 맛을 낸다. 멸치찌개(2~3인) 2만원.
글·사진=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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