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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될 대로 돼라? 무책임한 한국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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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바둑에서 가장 인기없고 지루한 이슈는 바로 바둑 룰에 관한 것이다. 중국.일본.대만의 관계자들은 1980년대에 이미 바둑 룰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끝냈다. 남겨진 것은 오직 정치적인 문제다. 룰 회의는 겨우 세 번 열렸고 제대로 된 토론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참가국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압박에 놓여 있다. 이건 예상된 일이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한국기원의 대응방법이다. 이번 회의에 나는 김수장 9단과 함께 한국기원을 대표해 이 회의에 참가한다. 그런데 한국기원은 이번에도 아무 지침이나 의견이 없다. 첫 회의 이후부터 한국기원에 의견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으나 한국기원은 새로운 참가자를 파견하거나 전혀 토의도 되지 않는 신종(?) 이론을 제시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룰 회의는 학술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쓰이지 않는 신종 이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IGF는 GAISF에 가입할 때 자신들의 룰, 즉 일본 룰을 제출했다. 룰이 없이는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권이 주도하는 '국제룰 회의'는 IGF에 룰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은 자못 치열하다. 한국기원은 바둑 최강국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 뿐 룰에 대해선 될 대도 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둑계의 당면 목표라 할 바둑의 스포츠화는 국제기구와 연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국제적으로 바둑의 스포츠화가 이뤄진다면 국내에서도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기원은 바둑을 체육으로 만들려는 국제기구의 노력에 무관심하거나, 다 정해놓으면 따라가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 태도는 버려야 한다. 또 바둑을 스포츠로 만들려고 하면서 중계권은 놔둔 채 바둑 경기 자체를 지적 재산권화하려고 시도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모순된 행동이다.

15일 열리는 5차 바둑룰 회의는 서울에서 열리고 한국기원이 경비를 부담한다. 돈은 내지만 목표는 불투명하다. 이 회의는 무엇이 쟁점이고 해결방안이 무엇인가. 한국기원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남치형 (명지대 교수·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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