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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는 소설처럼 무서운 걸까?"..'알파고' CCTV’ 개발 속도..“편리함”vs“인권침해” 논란은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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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 직장인 권모(30)씨는 지난주 두 번 지각을 했다. 건물까지는 아슬아슬하게 3분 전에 도착했지만 출입카드를 집에 두고 온 것이 문제였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선 안내데스크로 가서 신분증을 맡기고 임시출입증을 받아야 했다. 결국 사무실에 도착하자 9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2. 절도 사건을 수사하던 일선 경찰서 이모 형사는 지난달 이틀 연속 밤을 새웠다. 용의자 동선을 추적하기위해 폐쇄회로TV(CCTV) 수백대 분량 영상을 전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밤새 모니터를 쳐다보려니 눈이 아팠지만 용의자가 CCTV에 등장할 때까지 계속 화면을 돌려볼 수밖에 없었다.

#3.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시의 한 유제품 가공공장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화조를 점검하러 들어간 근로자가 쓰러지자 다른 두 명이 그를 구하려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이다. 이들은 방독면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아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편안한 직장생활부터 목숨이 걸린 중대한 안전 문제까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세가지 다른 상황이지만, 어쩌면 지능형 CCTV 하나로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능형 CCTV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경기 악화에도 보안 관련 시장은 뜨겁다. 국내 1위 보안 회사 에스원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1조 830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다른 보안 회사인 ADT캡스나 KT텔레캅의 매출도 증가했다.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CCTV 기술이 가는 길은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ㆍ딥러닝 등 첨단 기술이 핵심이다. 한화테크윈은 지난 6일 AI기술 개발업체 엔비디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지능형 CCTV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지능형 영상분석 플랫폼’을 적용해 촬영 중인 장면에서 이상 상황을 스스로 감지하고 조치하거나 도로 교통량, 매장 내 고객 동선 정보 등을 사람처럼 분석해 제공하는 ‘똑똑한 CCTV’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에스원은 업무공간 보안 기술 ‘워크쓰루(Walk-Thru) 스피드게이트’ 기술을 지난달 세계보안엑스포(SECON)에서 선보였다. 카메라가 얼굴 데이터를 축적ㆍ학습해 카드나 지문인식 같은 조작 없이 보안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정면부터 측면까지 좌우 90도 범위로 얼굴을 인식하고 29개 특징점을 찾아내 출입이 가능한 인물인지 가려낸다. 홍체ㆍ지문인식보다 빠르고 양손에 서류를 든 상태로도 편하게 출입할 수 있다. 출입카드를 집에 두고 와 지각을 한 권씨 같은 직장인도 줄어들 수 있다.

터널 내 사고를 감지해 알려주는 ‘사고자동감시 SVMS(Smart Video Management System)’ 기술은 실제 터널에 적용돼 시험 운영 중이다. 차량 역주행ㆍ보행자 출입ㆍ화재 등 비상상황을 빠르게 감지한다. 현재 위험도가 높은 터널은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하도록 돼있지만 관리자가 비상상황을 확인하는데 최소 몇분이 걸려 2차 사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 CCTV가 스스로 상황을 인지해 알리고, 차량 진입을 막거나 소방서에 신고까지 할 수 있다. 에스원 측은 “사고 상황 인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20초 이내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응용해 세 번째 사례 같은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 유독가스가 나오는 현장에서 근로자가 방독면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으면 CCTV가 스스로 인지해 경고음을 내거나 관리자에게 알리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연구기관들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2014년부터 CCTV 영상 속 대상을 분석해 추적할 수 있는 시각 인공지능 ‘딥뷰(DeepView)’를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형사들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영상을 돌려보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을 통해 쉽게 개체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다. 딥뷰가 특정 CCTV 영상 속 등장인물이나 차량이 다른 영상 속 개체와 동일한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CTV 기술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보다는 오히려 불안감과 불편함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CCTV는 탄생 때부터 개인정보ㆍ인권 침해 논란을 낳았다. 2015년 말 기준 공공기관이 공개된 장소에 설치한 CCTV만 전국에 74만여대에 달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에서 독재자 ‘빅브라더’가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쓰인 핵심 기술도 CCTV의 진화형인 ‘텔레스크린’이다.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까지 감시ㆍ통제한다. 소설이 탄생할 당시엔 그저 상상이었지만 지능형 CCTV 기술이 더 발전하고 ‘나쁜 권력’과 만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또 CCTV는 다른 모든 인공지능 기계들의 눈이 될 수 있어 고도의 방어기술이 요구된다. 수많은 장치들이 CCTV를 통해 상황을 감지하고 작동하도록 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만 뚫려도 영상이 악용될 여지가 있다. 시민단체들은 “막연히 안전만 생각하고 CCTV를 확대하면 개인의 사생활과 같은 다른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엔 마라도 방범용 CCTV 설치 소식에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이동성 에스원 융합보안연구소 그룹장은 “기술 발전보다는 관련 논란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게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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