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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은 문학이 정직과 겸손의 노동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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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죽어 우리 문학의 환한 별자리가 된 작가들 가운데 김소진(1963∼97)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이념의 중력에서 풀려나, 전망 없이 부유하던 90년대 한국문학은 우리말과 질박한 토속어를 앞세운 그의 간곡한 소설 덕분에 한층 풍요로울 수 있었다. 단순한 요절 효과를 넘어, 적지 않은 이들이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다. 그의 스무 번째 기일이 오는 22일이다. 생전 그와 막역했던 소설가 성석제, 문학평론가 정홍수·진정석씨 등은 지난 8일 그의 산소를 앞당겨 다녀왔다. 정홍수씨의 추모글을 싣는다. 

소설가 김소진 20주기, 생전 막역했던 평론가 정홍수씨 추모글

생전의 김소진. 1991년 등단해 97년 세상을 뜰 때까지 7년 동안 소설집 세 권, 장편 두 편을 남겼다.  

생전의 김소진. 1991년 등단해 97년 세상을 뜰 때까지 7년 동안 소설집 세 권, 장편 두 편을 남겼다.

지금은 우리가 이고 갈 시간
-김소진 20주기에 부쳐

용인시 모현면 초부리. 소설가 김소진이 묻혀 있는 공원묘원의 주소다. 산소 자리는 63번지 5-310. 배려심 많은 성정에 기억하기 좋으라고 태어난 해를 지상의 마지막 주소로 삼은 걸까. 이맘때면 묘지 입구부터 벚꽃이 눈처럼 날린다. 김성동 선생이 짓고 쓴 묘비명을 뒤에 두고 담배를 꺼내 들면 산자락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공원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진의 자리 아래로는 “겅성드뭇하게”(김소진, '쥐잡기') 휑한 느낌이던 것이 지금은 옆쪽 사면도 거의 찼다. 언젠가는 묘지를 찾은 친구들의 반백이 서로의 눈에 들어왔고 매해 사진이나 찍어두자는 부질없는 말도 오갔던 것 같다. 그렇게 봄소풍 다녀오듯 하는 사이 20년이 훌쩍 흘렀다.
떠난 이의 시간은 멈춘다. 더 이상 늙지도 않으며 악착같은 세월의 수금원도 비껴간다. 겨울이면 즐겨 입던 옅은 밤색 스웨터 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30대 김소진의 사진은 세속의 시간이 잊고 있는 영원의 증거처럼 언제나 거기 멈추어 있다. 그러는 한, 그가 멈춘 자리에서 더해온 우리의 20년 시간도 찰나 같고 지금 당장 다시 만나도 어젯밤 헤어진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술이 달고 사람이 달고 이야기가 달기만 하던 환한 봄밤의 자리 언제가 김소진이 여기 함께 있었으면 하고 애타했을 수도 있다. 수줍은 과묵의 이면으로 세상살이의 속내에 대한 의뭉스런 관찰을 놓치지 않던 김소진. 소주 한 모금을 달게 마시곤 짓궂게 캐묻고 확인하며 이야기 거리를 찾고 쟁이던 모습이 그립고 그립다.

8일 경기도 용인의 김소진 산소를 찾은 지인들. 왼쪽부터 소설가 성석제씨, 문학평론가 정홍수씨. 

8일 경기도 용인의 김소진 산소를 찾은 지인들. 왼쪽부터 소설가 성석제씨, 문학평론가 정홍수씨.

지난 연말 광화문 촛불 광장에서 내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면 그때 그는 그곳 어딘가에 있었을까.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밥풀떼기’들과 함께. 국민 주권의 함성이 벅차게 타오르고 있던 그 축제의 현장에서도 혹간 구석을 찾아드는 궁벽진 자리는 있었을 테고, 김소진의 문학 언어는 그곳들을 챙겼으리라. “아따, 목젖이 따땃해짐시러 가슴이 후끈허고 봉알 밑까지 다 노글노글헌 게 이제사 내 몸띠이가 오붓이 내 거 같네그려.” 열사의 시신을 지키는 긴박한 현장 한쪽에서 쓸쓸히 죽어간 ‘주거부정, 무직’의 어떤 이를 그들의 언어로 챙기고 기록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소진 소설은 미아리 산동네를 기억의 육체로 하여 씌어졌다. 그 산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질 때 김소진 소설은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애처롭고 눈부신 상상력으로 그 소멸에 맞섰다. 그리고 이게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금간 항아리를 덮어놓은 눈은 한낮의 볕에 금세 녹아내린다. 그렇다면 이건 그가 7년 남짓 쓰고 또 썼던 소설이라는 생업에 바친 스스로의 애도였던 것일까. 김소진은 내게 문학이 한 인간의 자기 정직과 겸손의 노동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무언가 거창해지려 하고, 오만과 허세가 끼어들려 할 때 나는 김소진과 그의 문학을 생각한다. 그게 고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죽은 자를 이고 갈 뿐이다. 그런 다음에는 누군가가 우리를 잠시 이고 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누군가가 우리를 이고 갔던 자들을 이고 가고…”(존 밴빌, 『바다』) 그가 아버지와 어머니, 미아리 산동네의 기억을 잠시 이고 갔듯이, 그래, 지금은 우리가 그를 잠시 이고 갈 뿐이리라.
문학평론가 정홍수.

◆김소진=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실향민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한겨레 신문 교열기자로 근무하던 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방위 시절 『새우리말 큰사전』을 독파하며 습득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유년시절 미아리 산동네 체험을 녹인 자전적인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해 주목받았다.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고아떤 뺑덕어멈』『자전거 도둑』, 장편 『장석조네사람들』『양파』, 유고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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