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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만우절 잘못된 만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6호 31면

외국인의 눈

매년 만우절이 되면 터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똑같은 글과 영상이 돌아다닌다. 만우절의 기원에 대한 설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기가 막힐 정도의 역사 왜곡이다. 설에 따르면, 15세기 말 16세기 초 스페인 왕국이 스페인반도에 있는 이슬람계 알 안달루스 문명의 뿌리를 뽑고 있는 과정에서 마지막 하나의 요새가 남았다. 십자군 장군은 그 요새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투항하는 조건으로 살려 주고 아프리카로 이민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믿은 무슬림들이 그 요새를 비우기 시작했지만, 바로 다음 날 유럽 군인들이 무슬림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무슬림들이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자, 장군은 “그날은 우리 서양인들이 거짓말하는 날이야. 믿지 말았어야지”라고 대답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왜곡된 역사 지식이 많이 유포되다 보니까 오늘날 터키에서 많은 사람이 만우절의 기원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다.

올해, 2017년 터키와 만우절의 잘못된 만남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지난 3월 31일에는 과자·초콜릿 시장의 재벌 기업 위케르가 만우절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초콜릿 와플을 팔기 위해 홍보영상을 내놓았다. 형과 동생 간의 농담이 담긴 이 홍보영상의 끝에는 “4월 1일, 이제는 보복의 때가 왔다”는 말이 나온다.

터키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터키 집권 정의개발당(AKP) 지지층은 이 영상을 ‘제2의 쿠데타’ 신호로 받아들였다. 정치평론가들은 위케르의 홍보영상을 맹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광장으로 불렀다. 친정부 성향의 시민들은 혹시나 쿠데타가 일어날까봐 광장에서 밤을 새웠다. 당시에 해외 출장 중이던 위케르 사장 무라트 위케르는 사태가 커지자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AKP 지지층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위케르 과자를 불태워 버리거나, 부셔버리는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이건 실제 일어난 상황이다. 농담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사건이 터키를 비롯한 중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동에서 왜 이렇게 많은 문제가 생기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바로 “무지(無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곡된 지식이 너무나 쉽게 유포되고, 국민 인식을 조작하는 것도 힘들지 않다. 교육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알파고 시나씨
하베르 코레 편집장, 전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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