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 무능·무책임을 왜 국민연금으로 돌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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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3800억원을 둘러싼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어제 투자위원회가 가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주에 또 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으로선 진퇴양난이다. 정부의 요구대로 절반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를 3년 유예하면 2600억원가량의 손실을 입게 된다. 그렇다고 요구를 거절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사전회생계획제도(P플랜)에 들어가면 투자액의 최대 90%가 날아간다. 어느 경우든 잘못된 투자 판단으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날린 책임을 비껴가기 어렵다. 이제라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손실을 최소화할 방책을 찾아야 한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정부다. 문제의 회사채는 대우조선 경영진이 수조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르던 시기에 발행됐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관리 의무를 방기하고 낙하산 심기에만 열중했다. 뒤늦게 회사가 빈껍데기라는 게 밝혀졌지만 정부는 대책 없는 낙관론을 반복하며 지원을 계속해 왔다. 2015년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했고 지난해 12월 2조8000억원을 출자전환했다. 지금도 2조9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지원과 출자전환을 통한 채무 축소를 추진 중이다. 과거의 무능과 책임을 끝없는 혈세 투입으로 덮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국민연금에 출자전환을 압박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국민연금 등 채권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이익인지 이미 명확한 답이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정부 쌈짓돈이 아니다. 돈을 낸 가입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이 불러온 후폭풍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책임 추궁을 당해도 그건 국민연금의 몫이 돼야 한다.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정부의 국민연금 압박은 무능을 구태로 덮으려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