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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한반도 남방한계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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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용환중앙SUNDAY 차장

정용환중앙SUNDAY 차장

북한 급변 사태를 논할 때 중국은 자국이 강력한 이해 상관자라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대량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 혼란, 더 나아가 변경의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를 댄다. 북한이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대미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안보 전략상 위기 인식이 없을 리 없다. 또 북한 대내외 경제에 대한 중국의 독보적 영향력이 타격을 입을 텐데 공식적으론 안보나 경제 이해를 내세우지 않는다. 난민 대책 속에 안보·경제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전의 카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한국 고등교육재단 주최로 열린 강연. 미국의 저명한 군사·안보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중국이 세울 난민 수용소의 본질을 건드렸다. 베넷 박사는 “국제회의에서 종종 중국 측 참석자들은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북·중 국경 저 너머 북한 땅 안쪽으로 50~100㎞ 들어간 지역에 난민 수용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이른바 ‘난민 폭탄’을 영내에 끌어들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중무장한 인민해방군이 압록강·두만강을 건널 것이란 얘기다. 북한 영내로 5~10㎞ 진입해 봤자 산악 지역이라 대규모 수용소를 세울 수 없기 때문에 깊숙이 더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쪽으로 50㎞ 들어온 철산~나진 라인은 동서로 550㎞에 달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100㎞를 더 내려온 안주~화성 라인도 동서 길이가 500㎞에 달한다. 전략적으로 방어에 취약한 곳이다.

한·미 동맹도 북쪽을 향해 움직일 것을 가정한 중국 군부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다. 영변의 핵물질을 먼저 확보해 한·미 동맹의 북상 명분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런 배경에서 인민해방군이 한반도에서 가장 짧은 병목 구간인 청천강~함흥선까지 내려올 수 있다고 베넷 박사는 주장했다. 상황이 요동치면 꼭두각시 친중 정권을 세울 요량으로 평양 아래 남포~원산선까지 내달릴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는 게 베넷 박사의 경고다. 함흥·원산은 북한이 옛 소련에 나진항을 임차해 주자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 중국이 1984년 5월 후야오방(胡耀邦) 당시 총서기를 파견해 답사까지 했던 지역이다. 둘 다 동해 진출에 목이 마른 중국이 그토록 갈망하던 항구가 있는 곳이다.

오늘 열리는 트럼프·시진핑(習近平)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는 핵심 의제가 될지 여부를 떠나 테이블 양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긴장 유발 요인이다. 트럼프는 대북 선제타격을 상상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고 부국강병할 시간이 필요한 시진핑은 북한 급변 사태 이후 미국과 맞닥뜨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야 하는 구도다. 시진핑이 물러설까. ‘북한 없는 중국’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거래에 능한 트럼프 어깨 너머로 난민 수용소 카드를 가다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용환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