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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난 될 것 같다’는 미친 생각이 세상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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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인터뷰를 하면서 울컥하기는 오랜만이었다. 국내 1위 청소도우미 파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미소’를 만든 빅터 칭(36) 대표와 창업자의 고단한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05년 한국에 건너와 네 차례의 창업에 도전했다. “창업이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바닥이라 여겼던 곳 아래에 또다른 바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대표를 맡았던 세번째 창업에서 실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의 소개팅 앱 ‘친친’이었다. 폐업을 하면 어떤 기분이냐는 ‘잔인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폐업을 할 땐 오히려 쉬워요. 폐업하기 직전이 힘들어요. 거의 매일 악몽을 꾸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뭘 해야할지 생각하죠. 폐업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최대한 해보는 거에요.” 그는 “폐업을 해 보면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볼 수 있다”며 웃었다.

그렇게 힘든데 왜 계속 창업에 도전할까.

“같이 창업한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너는 바보냐 아니면 미쳤냐. 왜 이런 힘든 짓을 하냐고. 저는 미친 쪽인 거 같아요. 1조원 가치의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고 하죠.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될 확률은 0.001%도 안돼요. 그런데도 시작할 때는 늘 ‘나는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정상적인 사고는 아닌 것 같아요.”

울컥한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 순수한 대답을 오랜만에 들어서인 것 같다. 최근 머릿 속을 꽉 채운 화두는 이것이다. 왜 한국은 미국·중국처럼 창업 열기가 뜨겁지 않은가.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의 최고경영진을 만나면 늘 묻는 질문도 이것이다. “한국에 창업 열기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모두 비슷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 스타트업의 실패를 사회의 자산으로 인정하는 것. 한 인도계 IT 회사의 한국법인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 회사의 실패는 다른 예비 창업자에게 교과서가 된다. 이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지를 가르친다. 그래서 실패는 사회적인 보상을 받을만 하다.”

친친은 실패했지만 앞으로 나올 다른 소개팅 앱은 이 실패에서 많은 걸 배울 거다. 빅터 칭 대표의 ‘미친 짓’은 헛수고가 아니었단 얘기다. 이런 미친 짓을 격려하고, 이들이 실패를 거듭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사회가 할 일이다. 세상은 결국 바보 아니면 ‘미친 사람’이 바꾼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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