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화상 연결 인터뷰가 장안의 화제다. 이날 홍 후보는 손 앵커의 질문에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온다”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지냐” “그거 말고 다른 걸 물어라”는 등 시종일관 질문의 논지를 벗어나거나 다소 공격적이고 거친 답변 태도로 일관했다.
전날 밤 두 사람의 설전이 인터넷 게시판과 SNS 등을 타고 전파되면서 5일 오전 JTBC 홈페이지, 네이버ㆍ다음, 유튜브 등을 통해 해당 인터뷰 영상 조회수는 수 만 건을 기록했다. 이날 인터뷰 과정에서 특히 논란이 된 대목은 ‘친박 청산 ’관련한 홍 후보의 발언이다.
'친박없다' 선언했지만 TK지역에선 친박계에 기대기도 #친박 아니라는 김진태 의원, 朴 자택 8인 중 한 명 #최경환, 조원진 등 친박 핵심도 홍 후보 지원 #인명진 전 비대위원장도 친박 청산 미완성 비판받아
- 이제 당에 친박은 없다고 하시니까 좀 헷갈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손석희)
- “친박이 있었다면 제가 이 친박 정당에서 책임당원 투표의 61.4%를 득표할 수 있었겠습니까? 친박이 없어진 거죠. 이제는 자유한국당 당원들만 남은 거죠.”(홍준표)
- “예를 들면 강원 쪽을 맡은 김진태 의원은 그러면 친박은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손석희)
- “본인이 토론 과정에서 친박 아니라고 수차례 이야기를 했어요. 친박이 아니라고 봐야죠.” (홍준표)
오히려 TK 지역 등 선대위에 친박 인사 중용
홍 후보가 “친박은 없어졌다”고 말한 것은 이제 자신이 당의 중심이기 때문에 친박, 비박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친박의 수장인 박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으로 외형적으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현 상황에서 구심점이 사라진 친박계 의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갈 곳 없는 TK의 표심을 온전히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내 경선 때만해도 친박에 비판적이던 홍 후보였지만, 후보 확정 후에는 노골적으로 친박에 기대는 행보를 보인다는 것이 당 안팎의 시각이다.
불과 일주일 전(3월 29일) 만해도 “(박근혜 대통령을) 춘향인 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었다. 그래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홍 후보는 대선후보가 된 뒤 처음(4월 4일) 방문한 대구ㆍ경북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박정희 대통령 생가였다.
또 같은 날 대구 엑스포에서 열린 ‘경북 선대위발대식 겸 필승대회’에선 “5월 9일 홍준표 정부가 들어서면 박근혜는 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구경북 선대위에도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태다.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 여러차례 참석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백승주 의원을 대구, 경북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열린 이 행사에 친박 핵심으로 꼽히는 최경환 의원과 조원진 의원이 참석했다.
최 의원은 이날 “대구 경북에선 탄핵에 앞장서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구속까지 시킨 세력에 대해 아마도 거리를 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박은 없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친박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친박’정서를 적극적으로 앞세워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을 의식한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 후보는 지난 3일 오전에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친박들에 대한 징계를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선이 되면 사람을 빼내기가 참 어렵다”면서 1997년 대선을 예로 들었다.
"대선 되면 사람 빼내기 어려워"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YS)의 출당을 요구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37만 표 차로 석패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대선에선 YS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했던 이인제 후보가 500만 표를 가져갔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 정국에서 당내에서 인위적인 친박 청산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비박계 한 의원은 “당의 힘을 결집해 내야하는 홍 후보 입장에서 ‘친박은 없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선언적 의미일 뿐 실제로 친박이 청산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측에서도 홍 후보의 ‘친박은 없다’는 발언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 측근인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친박 8인, 최소한 그 사람들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가 있어야 (후보 단일화에 대한) 명분이라도 생기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홍 후보를 겨냥해 “탄핵을 일으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박 핵심들을 청산은 커녕 완전히 꽃보직을 주면서 우대하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홍 후보는 경선과 그 이전만 해도 친박 청산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수 차례 했지만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들어가면서 특정 계파 청산보다는 통합과 화합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사실 인명진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런 홍 후보의 입장변화와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초기엔 친박 청산을 외치며 칼을 빼들었지만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이정현 전 대표 탈당 후 서청원ㆍ최경환ㆍ윤상현 등 친박 최측근 인사 3명을 징계위에 회부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당이 ‘아스팔트 보수’까지 포용하는 보수의 그릇이 돼야 한다”고 했다.
“김진태 의원이 친박이 아니라고 했다” 한 사실은 있지만…
친박 핵심인사로 분류되는 김진태 의원에 대해 홍 후보는 “김 의원 자신이 ‘친박이 아니다’라고 수 차례 얘기했다”면서 “친박인사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우선 김 의원 자신이 실제로 “나는 친박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을까.
김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인터뷰나 토론회 등을 통해 ‘친박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은 사실이다. 김 의원은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대선주자 토론회(3월 28일)에서 “강성 친박 이미지가 강하다. 표의 확장성에 우려하는 시각도 많은데?”라는 질문에 “강성도 아니고 친박도 아니다”라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혼자 버티다보니 강성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친박단체들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는데 이용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도 “이제 친박은 없다. 나도 친박이 아니고 누굴 이용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했다.
홍 후보의 언급처럼 김 의원이 자신은 “친박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권이나 일반인들 중 김 의원을 당내 친박계 핵심 인사로 보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진태 의원 '호위무사 8인' 중 한 명?
김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직후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뒤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선거 후보자 비전대회’(3월 17일)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갔는데 이 당에 무슨 친박이 있겠냐”면서도 “박 전 대통령을 지키겠다” “친박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가겠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김 의원은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조원진, 박대출, 민경욱, 이우현 의원 등과 함께 당 안팎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 8인’ ‘호위무사 8인’으로도 불린다. 김 의원은 경선 당시 홍 후보의 ‘친박 청산’언급에 발끈해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며 “중대 결심” 등 발언을 쏟아내는 등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정치적 거리는 최근 급속히 가까워진 상태다. 홍 후보는 최근 “김진태 의원에게 강원도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기겠다”고 밝히며 “소신이 뚜렷하고 우파의 소신을 가진 분”이라고 칭찬했다.
(※손석희 앵커는 홍 후보와의 인터뷰가 끝난 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소셜 라이브에서 “오늘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 사람이 많지? 홍준표 후보부터 시작해서…”라고 농담조로 언급하며 이날 홍 후보와의 인터뷰 과정에서의 곤혹스러움을 재차 내비치기도 했다.)
[팩트체크 결과] "자유한국당에 친박은 없다. 김진태 의원은 친박이 아니다"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며 설득력이 떨어지는 발언이다. 친박 관련 홍 후보의 발언은 대부분 거짓이다.(☞25%)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