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얇아지는 지갑, 소득 4% 늘 때 세금 11%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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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가계에서 번 돈이 4% 늘어나는 동안 세금은 11% 증가했다. 가계소득에서 세금으로 지출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가계소득 대비 세금 비율 #국민연금 등 합치면 첫 26% 넘어

2일 한국은행 ‘2016년 국민계정’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는 1018조4316억원을 벌었다. 1년 전과 비교해 4.3% 늘었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2%) 이래 최저다. 명목 국민총소득(GNI)을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다.

반면 지난해 가계가 세금으로 지출한 돈은 81조4112억원으로 전년 대비 11.2% 증가했다. 2015년(11.4%)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세금이 늘어나는 속도는 가계소득보다 2.6배 빨랐다. 소득세제 개편, 각종 비과세 감면 축소, 부동산 거래 증가 등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가계소득에서 세금으로 나간 돈의 비율은 지난해 8%로 올라섰다. 197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근로소득세·재산세와 같이 소득과 재산에 따라 매년 내는 세금(경상세)만 따진 숫자가 이 정도다. 교육세·유류세 등 비정기적으로 내는 세금(임시세)은 빠져있다.

세금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부담금까지 더하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간다. 가계소득 대비 세금·사회부담금 지출 비중은 지난해 26.3%였다. 역시 역대 최고치다. 기업 사정도 같다. 지난해 기업의 소득은 1년 전보다 3.7% 증가했는데 세금은 18.2% 증가했다.

경제가 어려워 가계와 기업의 벌이가 시원찮은데 정부가 끌어간 돈만 크게 늘어난 셈이다. 정부의 세수(세금 수입) 증가가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만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세 부담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조기 대선과 맞물려 나랏돈이 더 들어갈 각종 공약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세무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갑순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새 정부는 조세 부담의 공평성, 소득 재분배 기능 강화 등을 중심으로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한다”며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은 조세·재정 정책에 대한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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