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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꿈틀대는 무대 … 연극 본 당신, 여러 생각에 빠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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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 세계 공연계가 열광하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가 첫 내한했다. 그는 “다음 일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연극은 인생과 닮았다 ”고 말했다. [사진 LG아트센터]

전 세계 공연계가 열광하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가 첫 내한했다. 그는 “다음 일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연극은 인생과 닮았다 ”고 말했다. [사진 LG아트센터]

‘어디를 가도 그가 있다.’ -영국 ‘더 가디언’

세계가 주목하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 #건축가 다룬 ‘파운틴헤드’ 로 첫 내한 #4시간 동안 충격적 볼거리 이어져 #천장 카메라 6대, 영상 적극 활용 #도면 그리는 장면 등 스크린 중계

‘그를 만나라. 그는 지금 가장 빛나는 연출가다.’ -미국 ‘LA 타임즈’

‘그의 작품에는 당신이 연극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

오롯이 한 연출가에 쏟아진 찬사다. 그가 얼마나 ‘잘나가는’ 유명인인지 조금만 더 보자. 영국 국립극장, 바비칸 센터, 영 빅 씨어터, 미국의 BAM(Brooklyn Academy of Music), 독일의 샤우뷔네, 프랑스의 오데옹, 코미디 프랑세스 등등 전 세계 굴지의 공연장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런던에서 2015년부터 올 연말까지 8개 작품이 공연되고 뉴욕에서도 같은 기간 5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연극에서 시작해 뮤지컬·오페라로 확장하더니 TV 드라마와 영화 연출에도 도전했다. 수상 경력은 헤아리기 힘들다. 2015년에는 영국 올리비에상 작품상을, 지난해에는 미국의 토니상 연출상을 받았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그가 지난 한 해만 22개 상을 수상했다고 나와 있다.

‘파운틴헤드’의 공연 장면. 네덜란드 배우들이 모국어로 대사를 하고 스크린에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파운틴헤드’의 공연 장면. 네덜란드 배우들이 모국어로 대사를 하고 스크린에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어디를 가도 있다는 그의 이름은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59). 벨기에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극단 ‘토닐그룹 암스테르담’의 예술감독이다. 그가 한국에도 있게 됐다. 연극 ‘파운틴헤드(31일∼4월 2일 LG아트센터)’와 함께 첫 방한한 그가 30일 한국 언론과 마주 앉았다.

“‘파운틴헤드’는 내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다. 원작 소설을 무대에 올리는 데 6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절실하게 만들고 싶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생각을 담은 연극(Theater of ideas)’이다. 관객은 연극을 보고 여러 생각에 빠질 것이다.”

연극 ‘파운틴헤드’의 원작은 미국 작가 이안 랜드(1905∼82)가 1943년 발표한 동명소설이다. 1920∼30년대 미국의 젊은 건축가 2명의 이야기로, 한 명(하워드 로크)은 신념에 따른 건축을 추구하고 다른 한 명(피터 키팅)은 사회가 바라는 건축을 지향한다. 건축을 예술로 치환하면, 연극은 결국 예술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묻는 작품이다. 이보 반 호브가 소설을 읽자마자 연극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까닭이자,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고백한 까닭이다.

‘파운틴헤드’의 공연 장면. 네덜란드 배우들이 모국어로 대사를 하고 스크린에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파운틴헤드’의 공연 장면. 네덜란드 배우들이 모국어로 대사를 하고 스크린에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예술가로서는 물론 로크가 되고 싶다. 그러나 로크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세금도, 건강보험도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시민으로서는 생각이 다르다. 세금은 꼭 내야 한다(웃음). 극단을 경영하는 대표로서도 예술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 않다. 물론 현장에서는 모순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웃음).”

‘파운틴헤드’는 공연시간 4시간의 대작이다. 그러나 어느 외신에도 지루하다는 평은 안 보인다. 볼거리가, 때로는 충격적인 볼거리가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보 반 호브는 한국 언론 앞에 “배우 중심형 연출”이라고 소개했지만, 그는 거침 없이 연극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되물었다. 이를테면 ‘로마 비극’에서는 관객이 무대 위에 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오프닝 나이트’에서는 연극이 상연 중인 극장의 복도를 카메라로 비추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영상을 적극 활용한다.

“카메라 6대가 무대 천장에 고정된다. 카메라가 특정 장면을 촬영하면 무대 뒷벽에 설치한 스크린에서 바로 중계된다. 건축가가 도면을 그리는 장면이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재연될 것이다. 이 장면을 위해 배우들에게 도면 그리는 법을 배우라고 시켰다. 원래부터 연극은 여러 기술을 활용했다. 연극이 영상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

LG아트센터에 따르면 이보 반 호브는 특히 무대에 신경을 썼다. 무대를 최대한 넓게 쓰기 위해 무대 앞의 오케스트라 피트도 무대로 활용했다. 이렇게 가로 16m 세로 19.5m 면적의 깊고도 넓은 무대를 제작했고, 이 공간은 건축가들의 욕망이 꿈틀대고 충돌하는 건축사무실로 재현된다.

“연습실에서 배우에게 다음 장면을 예상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매 순간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나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출을 한다. 가정을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슬픈 역할이라고 내내 슬프기만 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연극은 인생과 비슷하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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