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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지도자, 진보·보수 합의로 새 대북정책 끌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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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은 29일 “새 정부의 지도자는 진보와 보수, 여와 야가 참여하는 국민적 담론 수준의 토론과 타협을 통해 새로운 대북정책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주최한 ‘비핵화와 교류협력은 병행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강연 #“한국만의 독자적 대북정책 만들어 #정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집행을 #한·미 동맹은 굉장히 중요한 전제 #통일 포기 안 한다면 남북교류해야 #핵동결 협상 열린 뒤 교류 재개를”

홍 전 회장은 “(대북정책은)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Ost Politik)처럼 합의된 원칙과 로드맵에 따라 정권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간의 햇볕정책, 이명박 정부 이후 9년간의 압박정책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도 못했고 북한의 붕괴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남남합의에 의한 하나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때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남북 간 대합의를 도출하고 공존과 공영,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새 대북정책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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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전 회장은 “지금 유력 대선후보들이 ‘통일’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멀미를 하지 않듯이 새 지도자는 한국만의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홍 전 회장은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현시점은 6·25전쟁 이후 전쟁 발발 위험성이 최고조”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전제로 한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의견도 밝혔다.

홍 전 회장은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은 핵 보유를 추진해 온 김정일의 북한과는 전혀 다른 나라”라며 “그렇기 때문에 한·미 동맹의 강력한 지속이 굉장히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철저한 안보 태세란 것을 대전제로 깔고 남북한 간 교류협력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 접촉 막히면 북한의 중·러 의존 심화”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9일 오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비핵화와 교류협력은 병행 가능한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홍 전 회장이 패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이난희 서울대 외교학과 석사과정, 김영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3년, 김학재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사진 김성룡 기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9일 오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비핵화와 교류협력은 병행 가능한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홍 전 회장이 패널들의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이난희 서울대 외교학과 석사과정, 김영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3년, 김학재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사진 김성룡 기자]

홍 전 회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당연히 치열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라면서 “동시에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 접촉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남북 교류협력론자”라고 소개하면서 교류협력을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먼저 교류협력이 전면 중단되면 남북한 접촉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을 들었다.

홍 전 회장은 “남북 교류협력이 중단되면 중국·러시아가 북한의 생명줄 역할을 더많이 할 수밖에 없다”며 “이럴 경우 한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통일의 길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역기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와 회원국의 독자 제재로 북·중 간 무역 규모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 대중 무역이 전체 무역의 91.3%(57억 달러·6조3000억원)를 차지할 만큼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심화됐다.

홍 전 회장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일시적으로 분단된 남한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도 남북 교류협력 실적을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의 국면이 열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운신하려면 북한을 동족으로 보는 관점에서 노력했다는 근거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북한을 순전히 제3국인 것처럼 강성 압박정책으로만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라고도 했다.

홍 전 회장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 조건도 제시했다. 결론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류협력 ▶북한의 위협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를 병행하는 교류협력이었다. 구체적으로 ▶현금 유입 ▶도발에 쓰일 수 있는 자원 유입 ▶북한 당국의 의지에 좌우되는 교류협력 등은 유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홍 전 회장은 “북한에 대한 지원이 북핵·미사일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런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교류를 추진할 공간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협력 재개 시점과 관련, “현 단계에서는 핵 동결을 위한 협상이 열린 후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입장도 내놓았다. 홍 전 회장은 “개성공단의 무조건 재개에는 반대하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은 엘리트 그룹이며 이들은 자본주의에 노출돼 있었다. 앞으로 통일이 될 때 그것이 갖는 함의는 상당히 크고 거기서 나오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 리더, 대국 상대할 외교력·배짱 필요”

새 정부 리더의 자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홍 전 회장은 “새로운 리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대국의 리더들을 상대할 수 있는 외교력과 배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차기 지도자는 튼튼하게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1인당 GDP(국내총생산) 2만 달러대의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리더가 요구된다”고 했다.

홍 전 회장은 강연 말미에 “(우리는) 때로는 (북한과) 대립하고, 때로는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현상을 변화시키고, 남북한 간 동질성을 키워 통일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과제를 안고 있다”며 “대북정책에 있어 가장 잘못된 자세는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유지혜 기자 yoo.jeehy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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