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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히든피겨스' 정신으로

중앙일보

입력

‘히든 피겨스’(원제 Hidden Figures, 3월 23일 개봉, 데오도르 멜피 감독)는 장벽을 부수고 편견에 맞선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법이 인종을 차별하던 시절인 1960년대 미국 남부, NASA(미국 항공우주국)는 치열한 우주 경쟁 속에 능력만 보고 흑인 여성을 채용했다. 이들은 차별과 멸시에도 꿋꿋이 연구해 미국 우주선을 하늘로 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숨겨진 인물들) 이야기의 연출을 맡은 이는 데오도르 멜피 감독. 이미 ‘세인트 빈센트’(2014)를 통해 휴머니즘과 코미디를 최상의 비율로 배합했던 그는 ‘히든 피겨스’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했다. 미국 LA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

히든 피겨스 촬영 현장 데오도르 멜피 감독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확인 후 재사용)

히든 피겨스 촬영 현장 데오도르 멜피 감독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확인 후 재사용)

LA=이경민 영화저널리스트

데오도르 멜피 감독,

-이런 이야기가 왜 이제야 영화화된 걸까. 

“그러게 말이다. 그게 이 세상의 문제 아니겠나. 축구 선수나 우주 비행사에겐 열광하면서, 역사에 크게 공헌한 수학자나 엔지니어에게는 무관심하다.”

이 이야기에 끌린 이유는. 

“마고 리 셰털리가 지은 원작 에세이를 축약본으로 먼저 읽었는데, 난생처음 본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50년 동안 역사에 숨겨진 인물들이다. 백인과 유색인을 분리하는 ‘짐 크로우 법’이 시행된 미국 남부, 그것도 NASA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업적을 다룬 영화라니 반하지 않을 수 없었지. 꼭 영화화하고 싶었다.”

당시 NASA가 여성을 고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950년대 NASA에서는 수학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남성들이 사무직 또는 비서직이라 생각해 수학 분야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인 여성 30명으로 구성된 이스트 컴퓨터(East Computer), 흑인 여성 22명으로 구성된 웨스트 컴퓨터(West Computer) 등 두 그룹을 만들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우주로 가는 데 필요한 수식 계산을 조용히 맡았다.”

이 영화를 정치적 영화라 생각하나.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영화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스며든 인종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 문제가 더 무섭다. 우린 더 이상 노예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성별이나 인종 때문에 고용 차별을 겪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적 영화가 맞다.”

히든피겨스 스틸.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히든피겨스 스틸.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각각 캐서린 존슨·도로시 본을 연기한 타라지 P 헨슨과 옥타비아 스펜서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헨슨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출연했을 때부터 함께 일하고 싶었다. 다른 배우들이 ‘감정의 강’을 갖고 있다면, 헨슨은 ‘감정의 바다’를 갖고 있다고 할 만큼 몰입도와 표현력이 뛰어났다. 누군가의 영혼에 즉각적으로 다가가는 능력이 있다. 스펜서는 우리 세대 가장 훌륭한 배우 중 한 명이다. 타인을 대변해 주는 강력한 여성 대표를 원했는데, 그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다.”

자넬 모네는 연기 경험이 없었다. 

“모네가 맡은 메리 잭슨은 세 명 가운데 선동자(Instigator)이자 불씨다. 미국 최초 우주 공학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싸워 백인들만 있는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불같은 열정이 있다. 모네를 만났을 때 그런 면모가 느껴졌다. 신선한 사람을 찾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히든 피겨스’의 정신 아닌가.”

제작과 음악을 맡은 퍼렐 윌리엄스는 어땠나. 

“처음부터 아주 큰 힘이 됐다. 평소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있었기에 우리 영화와 잘 맞았다. 스크립트 단계부터 다양한 의견을 냈다. 흑인 캐릭터를 묘사하거나 연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고, 굉장한 의욕과 활기를 모두에게 불어넣어 줬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허비 행콕을 데려와 피아노를 치게 하더니, 킴 버렐, 레일라 해서웨이, 얼리샤 키스, 메리 J 블라이즈를 데려오더라.”

히든 피겨스 / 사진=영화사제공

히든 피겨스 / 사진=영화사제공

-혹시 NASA가 ‘흑역사’를 들춰 싫어하지 않던가. 

“전혀. 당시 NASA는 짐 크로우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운영했다.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차별을 가장 먼저 깨부순 곳도 NASA다. 그들은 그 역사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오류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걸 고치고야 마는 것은 수학과 과학을 하는 이들의 특징이다.”

연출에 중점을 둔 점은. 

“최대한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1960년대에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했다. 많이 연구했고, 실제 캐서린 존슨(98)을 만나 당시 어땠는지 묻기도 했다. ‘교회·직장·집만 오갔다’고 하더라. 그 외에는 무서워서 가지 못했다고. 이 여성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는지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었다.”

캐서린 존슨을 실제로 만났을 때 어땠나. 

“여왕 혹은 공주를 만나는 듯했다. 정말 우아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 겸손했다. 조용하지만 집중력이 강했다. ‘난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라 하더라. 70대인 딸들과 이 영화를 봤는데, 감명받은 것 같았다. ‘칠판에서 문제를 푼 기억은 나는데, 사다리 타고 올라간 건 기억이 안 나네’라고 했다.”

히든 피겨스 / 사진=영화사제공

히든 피겨스 / 사진=영화사제공

메시지는 진중하지만 분위기는 유쾌하다. 

“어머니께서 ‘인생에서 울 준비를 할 필요는 없어’라고 늘 말씀하셨다. 눈물은 때가 되면 흐른다. 하지만 웃음은 노력으로 얻어야 한다. 이 영화는 인종 차별, 성차별 등 슬픈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기서 웃음을 찾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 아닌가.”

-흑인이 아니기에 촬영 현장에서 어색하진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 나도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이고, 미국 브루클린 교외 빈민가에서 자랐다. 내 친구들도 모두 가난한 흑인, 푸에르토리코인, 러시아인이었다. 이 영화는 내게 흑인 이야기라기보다 휴먼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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