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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안중근 의사의 새 붓글씨, 옥중에서 떨친 기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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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하얼빈역에서 브라우닝 M1900 권총으로 한반도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다섯 달 만이다. 일제의 관동도독부 재판정은 1910년 2월 14일 6회 공판에서 사형을 언도했고 40일 만에 형이 집행됐다.

상고도 포기한 채 32년 짧은 삶을 마감하던 그 해 초봄에 안 의사는 옥중에서 붓을 들었다. 애국적 기개가 깃든 '국가안위노심초사' '위국헌신군인본분' 같은 유묵은 그때 작품으로 현재 보물로 지정돼 후손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6년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유묵 두 점을 새로 입수했다. 모두 일본에 보관되어 있다가 백 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고야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박물관은 3월 23일부터 5월 28일까지 신소장품 특별전 '동포에게 고함'을 열고 유묵을 공개했다.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안 의사는 교육운동가였다.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사재를 털어 돈의 학교를 인수하고 삼흥학교를 설립했다. 이 유묵은 여순감옥 경수계장이었던 나카무라의 후손이 소장하던 것으로 박물관이 경매를 통해 입수했다.

'지사인인살신성인'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였고 이에 대해 한 점 후회가 없음을 당당해 드러낸 글귀다. 유묵은 안 의사의 공판을 취재하러 갔던 일본 신문사 통신원 고마쓰 모토코가 안 의사에게 받은 것으로 후손이 가보로 보관하던 것이다.

뤼순옥중 대한국인…. 가늘게 달필로 쓴 글씨가 어제 쓴 것처럼 깨끗하다. 안 의사의 유묵이 백 년 넘도록 고스란히 전해진 것은 소중하게 보관한 일본인들 역할도 컸다.

전시장에는 안 의사의 다양한 자료가 편집되어 방송되고 있다. 안 의사의 수감 당시의 사진이 유묵에 비치고 있다.

 안의사 공판장면이 실려있는 화첩 '안봉선풍경 부 만주화보'도 전시되고 있다. 화첩은 안의사 공판을 취재하러 갔던 고마쓰 모토코가 그린 것이다. 방청석에서 일어났던 실랑이, 서서 답변하는 안 의사의 뒷모습, 한국인 변호사와 통역, 취재기자들의 모습이 실려 있어 공판정의 풍경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고마쓰 모토코가 받은 공판방청권. 122호라고 되어 있다.

 전시장 안중근의사 이름에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뭐라고 썼을까.

역시, 정치인들을 꾸짖고 있다.

 글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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